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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발

헐벗은 기억



낡은 기억 들추기 - 4
 





헐벗은 내 몸이 뒤안에서 떠는것은
사랑과 미움과 배움에
너로부터 가르쳐 받지 못한 탓이나

하여 나는 바람부는 처음을 알고파서 두리번 거린다
말없이 찾아온 친구 곁에서
교정 뒤안의 황무지에서....(김민기/두리번거린다)


이 노래를 기억할 정도면 젊은 축에는 끼지 못하실 겁니다. 그때는 무엇 때문인지도 모르면서 막연히 서러워 술잔만 축내던 기억이 가물거립니다. 문득 이 노래가 생각납니다. 오늘 저녁 무렵부터 괜시리 두리번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나서부터죠. 8층 사무실에서 바깥을 두리번거리면 어디 귀신이라도 기다리는 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말입니다.


사는 일이 하도 바쁘고 대단해서 성인이 되고서는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게 우리들 시대입니다. 그렇게 쎄가 빠지게 달려도 어쩐지 한 해가 거듭될수록 남에게 뒤쳐지는 기분을 영 지울 수 없는 것도 소위 중년의 원인모를 우울이 아닐까 싶습니다. 혹시 앞만 보고 달려서 그런 건 아닐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경계 속에서 낙오되지 않으려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그들과 어쨌든 유대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책상서랍에 명함은 쌓여만 가는데 정작 두리번거리면서 기다릴 만한 사람 하나 없이 훌쩍 지나버린 세월이라는 생각도 문득 들게 됩니다. 왜 그렇게 사는가, 가끔은 잘못사는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할 때면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충동도 느끼게 됩니다.


이런 증상들이 바로 우리가 헐벗은 탓이 아닐까 모를 일입니다. 오늘은 문득 죽은 친구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그래서 8층의 높은 창가에서, 달리는 차창 밖에서 그 친구의 모습을 찾으려는 듯 두리번거렸나 봅니다. 잘못 산 것이 분명한 제 경우에는 산 사람과는 할 이야기가 갈수록 줄어듭니다. 구체적으로 발성되는 말도 귀찮아져 웅얼거리거나 그마저 지루해지면 어디 귀신하고나 말하고 싶어질 때도 종종 있습니다.


일년 가야 한 댓번 꿈을 꾸는데 어젯 새벽에 꿈인지 생신지 구분 안가는 느낌에 퍼뜩 잠에서 깼습니다. 느낌은 참 생생한데 분명 헛것이 분명합니다. 어른들 말마따나 사나운 꿈자리를 겪은 겁니다. 그때문에 날이 밝고도 마음 한켠이 꾸물거렸습니다. 요즘 몸이 좀 시원찮아서 흉한 꿈을 꿨겠거니 치부하려 들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떠난 누군가가 산 내게 참 절실한 소통이 필요했었나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떠난 사람에 대해서 산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기억이 고작인데, 기억을 깡그리 어디 저당잡히고 살아온 것에 대한 반성이 드는 날입니다. 오늘 잠들게 되면 혹시 귀신이 찾아와도 경망스럽게 놀라서 잠을 깨거나 하지 말 것이라 다짐합니다.  특별히 제삿날도 아닌 날에 몸이 차가와지도록 떠난 이 생각이 간절합니다. 아무래도 가을이 짙어져 그런가 봅니다. 그리고 어쩌면 꿈자리 사나운 값을 치룬 건지도 모를 일입니다.

2005년 11월




며칠 전에 이어 5년 전 찍었던 또 한 장의 부토 사진이다. 좀 더 기억을 더듬어보니 이때에 국립극장에서 부토 페스티벌이 열렸었다. 워낙 많은 말을 해놓았기 때문에 딱히 덧붙일 말이 없다. 거의 일기나 다름없는 기억인데, 5년이 지나고 들춰보니 5년 전의 나는 제법 골몰한 생각이 있었다. 내 스스로 머리를 쓰담쓰담해주고 싶다. 불과 5년인데 참 달라졌다. 그리고 친구가 그리운 것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그 친구는 그때도 지금도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리워 해도 만날 수 없는 대상을 이렇게 기억을 한번 들춰냄으로 해서 잊지 않고 있다고 먼 곳을 향해 손 한 번 흔들어줄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