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양심의 부담을 덜어준 소설

Posted by 탁발
2014.07.22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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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저자
한강 지음
출판사
창비 | 2014-05-19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한강을 뛰어넘은 한강의 소설억울한 영혼들의 말을 대신 전하는 오...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내가 밤낮없이 짊어지고 있는 더러운 죽음의 기억이, 진짜 죽음을 만나 깨끗이 나를 놓아주기를 기다립니다

 

5월 광주를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많이 아는 것도 같고 전혀 모르는 것도 같은 것이 805월 광주이다. 나는 요즘도 거의 매일 오월의 노래를 듣는다. 단지 노래가 좋기 때문일 뿐 매일같이 오월광주를 기린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까닭 없이 울컥해지는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여지없이 죄책감에 사로잡혀서 일상의 모든 것들이 구차해져버리곤 한다.

 

805월 나는 아무 것도 몰랐고, 그저 서울시내에 가득한 군인들이 불쾌했을 뿐이다. 그리고 세월이 조금 흐른 뒤에 오월광주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왜 그때 철없이 뉴스를 그대로 믿었던 것이 천추의 한이라고 할 만큼 억울하고 또 분했다. 그래도 세월은 잘도 흘러 벌써 805월광주로부터 30여년이나 도망쳐 왔다. 그때 죽은 사람들은 폭도 혹은 빨갱이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아직도 애먼 사람을 그렇게 버젓이 부르는 시대에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다.

 

그러다 우연히 한강의 신작소설 <소년이 온다>를 접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 광주에 대한 이야기다. 광주 그날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이후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날로부터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의 고통, 핍박을 말하는 것 같다. 당연히 자주 눈물이 날 것만 같은 순간들을 이겨내야 했다. 누가 쓰던, 누가 읽던 광주이야기는 그렇게 들려주고 들을 수밖에는 없지 않은가.

 

이 소설의 화자는 매우 독특하다. 나도 너도 그도 아닌 어른어른한 어떤 존재이다. 그렇지만 그런 요소를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적어도 그것이 기교가 아니라 작가가 가진 오월광주에 대한 엄연한 거리감에 대한 솔직한 고백일 것이라 짐작할 수는 있다. 작가가 5월 당시보다 이후에 천착한 것도 그런 진솔함의 일환일 거라 생각된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세월이 흘렀어도 광주가 어떻게 더 지속됐는지, 또 어떻게 광주를 이어갈지에 대한 주제의식의 표출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새삼 소설이라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말하면 광주를 고작 카타르시스로 써먹은 경박한 짓거리가 아닌가 싶은 생각에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그랬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에도 머릿속에는 동일한 의문이 지박령처럼 따라다녔다. 도대체 지금 광주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대체 일개 독자인 내게 어떤 의미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해답은 물론 소설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작가는 이 소설을 꽤나 늦게 쓴 편이다. 작가 한강은 광주출생으로 어릴 적 서울로 이사를 했는데, 그 시기가 오월광주와 무척이나 근접했다고 한다. 열 살 무렵에 무엇을 알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또 글이라는 것을 쓰면서 자신이 떠났던 광주에서 일어난 일의 무게감이 얼마나 커졌을까 어렴풋이 가늠할 수 있다.

 

 

작가에게 오월광주는 직접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결코 남의 일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작가라면 누구라도 그럴진대 광주출신이라면 더할 것이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게, 두려운 마음으로 이제야 광주에 대해 입을 뗄 수 있었던 것이리라. 남의 일이 아니지만 남의 입을 통해서 들은 이야기. 그 거리감이 나도 너도 그도 아닌 화자로 소설 속에 선 모습이 어른어른 보이는 느낌이다. 그렇게 꼭 안아줘야 하지만 안아줄 수 있는 몸이 없는 영혼의 심정으로 광주의 사람들을 누구도 놓치지 않고 세심하게 그려낸 것은 작가의 역량보다도 그 진심에 있을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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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e8. 지식 이상의 지식. 세상을 바꾸는 작은 힘

Posted by 탁발
2013.05.30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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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 이후 최고의 이론물리학자인 리처드 파인만은 기인에 가까운 천재였다. 노벨상위원회로부터 수상 소식을 알리는 전화를 받고는  노벨상을 꼭 받아야만 하냐고, 그까짓 걸로 새벽에 전화를 했냐고 불평하는 투로 대답했다는 사람이다. 그는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즐거움보다 더 큰 상은 없다고 했다. 미친 거 아니냐는 삐딱한 시선이 있을 수도 있지만 아주 흥미로운 사람이다. 바로 재미다. 세상을 짊어지건 혹은 파괴하건 그 주체자에게는 분명 다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재미가 있었을 것이다.

 

 


지식e Season. 8

저자
EBS 지식채널 e 지음
출판사
북하우스 | 2013-05-03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지식 이상의 울림을 전하는 지식 ⓔ 시리즈!21세기 한국인을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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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한 문화사학자는 인간의 본질은 호모 사피엔스(생각하는 인간), 호모 파베르(만드는 인간)도 아닌 호모 루덴스(노는 인간)라는 주장을 한 바 있다. 생각하는 인간도, 만드는 인간도 아닌 놀이하는 인간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의 본질이라는데 요즘처럼 절절하게 동감할 때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절이 달라져서가 아니라 생각하고, 만들기 바빠서 그것의 본질인 즐거움, 재미를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유머를 기대하지는 말라. 다만 웃긴 내용은 없지만 자주 웃게 한다. 아니 미소라고 해야 할 것이다. 또 반대로 가슴이 아려서 못 견디는 순간도 잦다. 어쨌든 자주 펴낸이와 독자와의 말없는 대화가 통하는 순간을 경험한다.

 

EBS가 펴낸 지식e8은 재미있는 책이다. 20059월 첫 방송 후 2013430일 무려 1,000회를 맞은 지식채널의 내용을 문자로 정리해낸 것인데, 보기에 따라서는 방송보다 책이 훨씬 더 흥미진진하다. 주관적 판단이 아니다. 지식e 시리즈가 이미 100만권 이상이 팔려나간 스테디셀러라는 사실에 근거한 말이다. 재미없다면 어떤 책이든 그렇게 많이, 오래 팔릴 리가 없기 때문이다. 5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완성된 상징과 은유가 풍부한 지식채널은 가히 다큐계의 무한도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 맞춰서 챙겨볼 수는 없지만 다음 포털에 마련된 지식채널 페이지를 통해서 빠뜨리지는 않고 보려고 애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천재 물리학자만이 아니라 기실 우리 모두는 재미없는 일에 잠시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볼 것이 천지인 세상에서 재미를 따돌릴 이슈가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슴으로 읽고, 정신을 채우는 지식이 가득한 지식e8은 읽는 동안 자주 가슴 뭉클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 뭉클함은 분명 호모 사피엔스의 영역일 테지만 징검다리처럼 연결되자 어느덧 호모 루덴스의 마당으로 나를 안내하고 있었다.

 

이 책에는 모두 알고는 있을 것 같지만 기실 알고 있지 않은 아주 많고, 중요한 사실들을 소중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미 할머니들이 된 마요광장의 어머니들이나 어쩌면 한국역사상 최고의 잡지라고 해야 할 뿌리깊은나무에 깊은 존경심을 담고 있다. 그렇게 가슴으로 읽고 나면 정신이 맑고 곧아지는 지식이 될 일들 30가지가 이 책에 담겨져 있다. 펴낸이들이 직접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지식채널이 이미 방송하고도 잊지 않고 이렇게 책으로까지 만든 이유는 인용된 하나의 문구에서 감지할 수 있다. 그 의지와 힘을 얻게 된다.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포기해선 안 된다. 세상은 결코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에릭 홉스봄)

 

당연하게도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떤 세상이 좋은 것일까. 지식e8은 그에 대한 완곡한 대답을 싣고 있다.  적어서도 세상 중 하나인 독자 스스로가 세상을 위한 좋은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첨언. EBS는 지식e8 출간을 기념하는 의미로 시청자 참여 UCC 공모전을 갖는다고 한다. 학교 폭력 및 왕따 등의 문제를 피해자 학생으로 그린 작년 대상작 별 일 없냐구요를 보면 이 UCC공모전의 의미를 알 수 있다. 그래선지 UCC 공모전 캐치프레이즈가 눈에 쏙 들어온다. ‘2013, 세상을 바꾸는 작은 힘이다.(http://home.ebs.co.kr/jisike/uccContest/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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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슬
    • 2013.05.31 10:33 신고
    서점에서 종종 접하던 책이네요.
    그냥 읽기만 했었는데...
    이제는 집에 들여야겠어요.
    가끔 올리신 책들..
    유용하게 잘 읽고 있습니다.

머리를 9하라. 카피라이터의 머리를 카피하라

Posted by 탁발
2013.05.04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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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위 자기계발서 보기를 돌 같이 한다. 비록 읽다가 접는 한이 있더라도 문학이니 인문학이 아니면 굳이 볼 필요가 없다는 고집을 피우는 편이다. 그런데 자기계발서 비스무리한 책 한 권을 손에 들었다. 바로 카피라이터 정철이 쓴 머리를 9하라. 나이 먹으면 속만 좁아지는 것이 아니라 귀도 좁아진다. 그러면서 머리도 줄어든 것만 같았는데, ‘머리를 9하라라는 제목이 우선 솔깃했다.

 

그래도 큰 기대를 걸지 않기로 작정하는 옹졸함을 포기하지 않은 채 표지를 열어갔다. 그런데 웬걸. 보통은 대충 보고 마는 서문부터 눈에 쏙쏙 들어오는 것이 대충 보고 말리라는 작심을 무너뜨리는 기분이 든다. 이 책을 읽는 순간 이외수 초기 소설에 매료됐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의 소설 들개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은 자기 멋대로 국어사전을 썼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방황. 보는 사람에게는 낭만이지만 하는 사람에게는 발 아픈 것.

 

이외수의 신 국어사전은 반항과 저항의 느낌을 각혈처럼 쏟아냈다면, 정철의 국어사전은 카피라이터라는 여피적인 직업이 주는 느낌처럼 세련되고 예리했다. 양자 모두 기존의 규정들을 비틀었고 또 기발하다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또 한쪽은 문학이고 다른 쪽은 실용이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실용이라는 표현은 문학과 다르다는 정도의 의미일 뿐이다) 어쨌든 반항과 방황에 도가 텄던 시절의 추억도 곁들여져 책장 넘기기가 무척 수월했다. 그리고 즐겁고 고마운 독서가 됐다.

 


머리를 9하라

저자
정철 지음
출판사
리더스북 | 2013-04-10 출간
카테고리
자기계발
책소개
생각이 꽉 막혀 도무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가? 어제와 똑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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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독서만으로 끝나버렸다면 리뷰 따위는 쓸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은 당장에 내 습관 하나를 바꿔버렸다. 추세에 떠밀려 스마트폰을 구입했지만 여전히 전화를 걸고, 문자를 받는 2G의 습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내가 그 많고 많은 기능 중에서 메모장을 열심히 쓰기 시작했다. 메모를 열심히 하다 보니 딱히 뭔가 떠오르지 않아도 메모할 거리가 없나 주변을 두리번거리기까지 한다. 별 것 아니라고 콧방귀를 뀔지 모르겠지만 지극히 게으른 나로선 커다란 변화였고, 그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일 예감이 강하다.

 

앞서 작가 이외수의 소설까지 예를 들어가며 설명했듯이 정철의 책은 비틀기다. 모든 자기계발서가 성공을 말한다면 이 책은 성장 혹은 변화를 추구한다. 그러니까 당장 성공에 목말라서 책을 찾는다면 이 책은 맞지 않다. 그러나 자기계발서 역시도 성공의 비법이 됐다는 말은 듣지는 못했다. 어쩌면 성공이라는 거창한 목표 대신에 성장이나 변화라는 전환이 현실적인 성공을 가능케 해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성공이란 이미 인구 몇 퍼센트로 정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희박한 성공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성공을 향한 방향만이라도 제대로 잡는 것은 아닐까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 자유를 위해 혹은 발상의 전환을 위해 가장 먼저 정철은 정답을 버리라고 한다. 상식이란 좋은 것이다. 상식만한 정답은 없지만 뒤집으면 식상이란 단어가 되는 만큼 함정도 크다. 정철은 이런 말을 한다. 1등은 가장 빨리 달린 사람이라면 꼴찌는 가장 열심히 달린 사람이라는 것이다. 한번, 두 번의 승부에서는 1등과 꼴찌가 바뀌지 않겠지만 언젠가 바뀔 거라는 희망과 예감을 가질 수 있다. 상식을 버릴 때 가능한 생각이다.

 

                       얼핏 보면 영락없는 김제동이다. 말빨은 이런 얼굴을 타고나야 한다?

 

정철은 가급적 단정적인 말을 피하려 한다. 책임을 회피하려는 꼼수가 아니라 발상의 전환이라는 대전제에 충실한 어법이라고 이해를 할 수 있다. 배울 만큼 배웠고, 사회 경험도 충분한 독자들을 향해 머리를 9하라라고 하면서 내어놓는 방법이 찾자, 떨자, 참자, 묻자, 놀자, 돌자, 따자, 하자, 영자 아홉 가지다. 그래서 구하라대신 ‘9하라라는 카피라이터다운 감각적인 책 제목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우리들 머리는 오랜 학습과 순응의 결과 수많은 정답과 상식이 점거하고 있다. 그것을 버리라는 것은 불온하고 위험한 선동일 수 있다. 어제와 같은 오늘 그리고 내일이라도 무관하다면 지금껏 지켜온 정답으로 나쁠 것 없다. 그러나 어제와 다른 오늘이 필요하다면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는 자신을 바꾸는 것이 빠를 것이다. 자신을 바꾼다는 것은 곧 머리를 바꾸는 것이다. 그래서 정철의 머리를 9하라는 세상이 변하지 않고도 다른 세상을 사는 법에 대한 자습서다.

 

상식이란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안 가는 단어. 사람들은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자고 외치다가 상식을 뒤집는 생각에 열광한다’ (정철. 인생사전 중)



이 책을 선물해준 ' 문화의 선한 바람을 일으키는 탑스피커즈 프로젝트( topspeakers.co.kr)'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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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도 읽으려고 책상 위에 두었는데...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상당히 기대되네요. ㅎ
    • 제가 먼저 읽고 쓰길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저야 연중행사다 싶게 책 소개를 하는데, 노지님 리뷰를 봤다면 쓸 말이 없었을테니까요. ㅎ
  2. 이 세상에 읽지 말아야 할 책은 없다던 고등학교 국어선생님 말씀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심지어 썬데이 서울마저도 읽으라고 하시더군요.
    평소 그리 관심두지 않았던 자기계발서를 통해 새로운 습관까지 생기셨다니
    문득 든 생각입니다.
    • 자기계발서로 성공하는 이는 저자밖에 없다는 말이 모두 참일 수는 없다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그저 솔직하게 썼는데, 다 쓰고 보니 꽤나 저자를 칭찬한 글이 돼버려 조금 민망키는 한데, 한 사람의 습관 하나를 바꿔놓은 힘이라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우겨봅니다. ^^
    • 2013.05.04 11:47
    비밀댓글입니다
    • 사실 문재인의 카피라이터였기 때문에 읽고 싶었는데 그 말은 쓰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읽고 보니 잡글이라도 매일 글을 쓰는 제게 큰 도움이 되겠더라구요. 일독 권합니다. ^^
  3. 저도 한번 읽어봐야 겠네요
    • 윤슬
    • 2013.05.06 14:47 신고
    님의 글을 읽자마자 동네 서점에
    구매예약했습니다.
    마침 읽고 싶은 책을 찾던중이었거든요...
    • 깽남
    • 2013.06.07 20:20 신고
    구미가 당기네요.
    한번 읽어봐야 되겠어요.
    추천 감솨해요.

나, 그(녀) 그리고 우리의 정체, 괴물

Posted by 탁발
2010.10.19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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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제훈의 소설집 ‘퀴르발 남작의 성’은 문학성 짙은 작품집답지 않게 읽는데 의욕을 불사르게 한다. 그의 소설이 다루고 있는 것이 지극히 가학적인 것들인 탓이다. 소설집 속 단편에서도 담겼듯이 누구에게나 잠재되어 있을 법한 폭력적 또 다른 자아들에 대해서 혹은 그것들을 주저하고, 후회할 것이 분명한 또 또 다른 자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어서 성선설 따위의 뒤편에 숨을 수 없는 치밀한 포위망을 갖춰놓고 있다. 

모든 소설가의 단편들이 그러하듯이 최제훈의 단편집들도 따로 발표된 것들이지만 하나의 책에 묶으니 자연스럽게 장편처럼 내용(적어도 작가가 천착하는 사회의 폭력성에 대해서)들이 이어졌다. 그러니까 서로 다른 지류의 물줄기들이 본류에 합류되면서 섞이게 되는 것처럼 최제훈 소설의 주인공들은 홍길동의 분신들이 흩어졌다가 다시 하나로 모이는 것처럼 하나의 주제를 향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작가가 언급한데로 그의 괴물은 드라큐라나 퀴르발 남작같은 본래 그렇게 만들어진 것보다는 몬테크리스토 백작처럼 이런 저런 조각들이 짜깁기된 것이다. 어쩌면 그 조각들 하나하나로는 결코 괴물이지 않은 것들이지만 그것들을 꿰매 놓으니 그 형상이 괴기스러워진 것처럼. 그런 작가의 커다란 구도는 다섯 번째에 실린 ‘마녀의 스테레오 타입에 대한 고찰 - 휘뚜루마뚜루 세계사1’에서는 더 이상 숨길 것이 뭐 있냐는 투로 직접화법을 이용하기도 한다.

퀴르발남작의성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최제훈 (문학과지성사,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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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의 기록 속에 마녀사냥은 17세기에 그쳤다고 하지만 21세기 뉴스에는 여전히 마녀사냥이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인용되고 있다. 그렇게 산 채로 사람을 태워 죽이는 일은 아니지만 불에 태워지는 것이나 다름없는 고통을 주는 마녀사냥은, 솔직히 고백하자, 현재도 횡행하고 있다. 마녀사냥의 주체는 언제나 그렇듯이 누구라고 적시된 인물들이 아니라 죄없는 마녀들이 불에 타 죽는 동안에 방관자인 동시에 조력자, 공범자였던 우리들에 대해서 작가는 매서운 질타를 쏟아 붓는다. 더우기 우리는 마녀들을 불태워 죽였던 장작불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광범위한 인터넷을 갖고 있기 있기에 우리의 괴물은 훨씬 더 무섭다.

“자신의 친척이나 이웃이 눈앞에서 불태워져 잿가루로 흩날리지만, 그들을 동정하거나 눈물을 흘리지 않았어. 절대 그럴 수 없었지. 그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니까. 자신들이 죄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말뚝에 묶인 자가 진짜 마녀가 되어야 했으니까...사냥이 진행될수록 인간들은 형벌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는 거야” 

영화 피셔 킹에서 주인공 잭 루퍼스의 애인은 이런 말을 한다. “신의 형상을 따라서 남자를 만들었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오히려 잉태를 통해서 창조 역할을 잇는 여자가 신을 닮았다. 남자는 반대로 악마를 본 따 만든 것이다. 대체로 못된 짓은 남자가 다 하지 않는가?” 최제훈의 소설 속 조각 괴물에는 여자도 존재한다. 그러나 기록되거나 구전되는 역사 속 가해자 리스트에 여자 이름이 오른 경우는 별로 찾아볼 수가 없다는 점에서 괴물을 구성하는 많은 조각들은 아마도 남자 이름일 것이다.


아무튼 남자가 됐건 통틀어 인간이 됐건 괴물과 우리는 잠재되거나 억제된 본능임을 말하는데 묘하게 죄책감이 들지 않는다. 적어도 독자에게는 그 우리의 범주에서 살짝 빠져나올 수 있는 신비한 장치가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최제훈의 소설은 인간 사회에 대한 뿌리 깊은 분노를 드러내는데 결코 주저하지 않지만 정작 그들 속 하나가 분명할 독자에게는 묘한 면죄부를 주고 있다. 마치, 그의 소설이 악에서 구해줄 무엇이나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 원인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우둔한 나로서는 도저히 분석해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결론을 위해서 미완성이고 지극히 추측에 불과한 것이나마 말하자면, 그것은 앞서 인용한 글 속에 나온 것처럼 그의 소설을 읽는 것은 또 한편으로는 불태워져 잿가루로 흩날리는 마녀를 지켜보던 그 시대의 군중의 시선이 되고,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 대한 통렬한 질타에 아쉬움을 두지 않아야 하는 것은 그러지 않으면 내가 괴물이 되고 마는 것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면죄부라 생각했던 것은 나의 착각일 따름일 뿐. 

최제훈의 소설은 충격 그 자체였다. 현대의 아니 인류 역사의 가장 근원적 문제에 대해서 아주 사적인 영역에서 그 이유를 밝혀내려고 하고 충분히 설득력을 담보해내고 있다. 폭력에 대한 집요한 리포트인 소설들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대목에서는 콧등이 시려진다. 그런 순간들 때문에 면죄부에 대한 착각을 갖게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골 아픈 주제의 소설은 읽는 것 자체가 작가와의 싸움이 되거나 동조자가 되는 일인데, 그런 과정을 통해 나는 그의 문장에 포로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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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좋은 책 잘보고갑니다.
    • 2010.10.19 07:40
    비밀댓글입니다
  2. 사실 사람 안에는 분명히 괴물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집단적 광기나 다른 사람의 생명이 죽어가는데도 그냥 지나치는 무관심 같은 것 말이죠.. 그러한 그들의 모습 혹은 나의 모습을 볼 때마다 섬짓섬짓하답니다.
  3. 그림들이 정말 섬뜩합니다.
    읽어보고 싶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4. 아. 갑자기 읽어보고 싶은 충동이 느껴지네요. 잘 보고 갑니다. 탁발님. ^^
  5. 안녕하세요탁발님~ 처음보는 소설인데
    아주 흥미로워보이네요 서평 잘 읽고갑니다
    문학성 짙은 소설을 읽고나면 한동안 그 감동에서 빠져나올수없죠~
    늘 그렇고그런 생활에 신선한 충격이되는거같아요. 읽어봐야겠습니다
    참 저는 이음출판사에서나왔구요^^
    블로그 오픈한지 얼마 안되서 기념으로 책서평이벤트를 하고있어요.
    경제에세이 관련 책이구요,
    경제학자인 아빠가 아이를 경제학으로 키워보려는 것을 주제로
    재밌게 쓰여진 책이에요.
    리뷰잘쓰시는 탁발님이 한번 참여해주셨으면해요~!^^*
    http://eumbooks.tistory.com/22 놀러오세요~
    • 2010.10.25 14:23
    비밀댓글입니다
    • 음..감사합니다.
      서평을 자주 쓰는 편이 아니라 좀 머쓱합니다;

친엄마는 진짜 엄마일까?

Posted by 탁발
2010.10.02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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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옆을스쳐간그소녀의이름은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최진영 (한겨레출판사, 2010년)
상세보기

1.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은 간만에 큰 충격을 준 소설이다. 착한 소녀가 아닌 어두운 밤공원 한켠에서 삼삼오오 몰려 불온하게 담배를 피우며 침을 찍찍 뱉어내는 불량소녀의 모습이 불현듯 아프게 다가선다. 이 책을 읽을라고 그랬는지 며칠 전 헬쓰를 나오는데 1층 창문 뒤에서 교복을 입은 채로 담배를 피우는 여중생 무리를 보았다. 그 아이들을 잠시 보며 나무래야 하나를 두고 잠시 고민하는데 그중 한 아이가 담배를 감출 필요도 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던 때가 떠오른다. 그 아이는 내가 말려주기 바랬던 것일까. 이 소설 속의 마지막 이름 유나를 보호해주던 남자들처럼 그 아이의 사정을 들어봤어야 했을까 문득 후회가 된다. 

2..
이 소설을 처음 읽어갈 때는 이외수가 떠올랐다. 그것이 우선은 흥미로왔다. 끝까지 소설 속 소녀의 의식에 따라붙는 사람을 갉아먹는 쥐 때문에 그런 듯 싶다. 이런 감상이 작가에게 혹시 결례가 될 지 모르지만 무의식 중에 떠오른 생각이니 어쩔 도리 없다. 소설 속 소녀의 긴 방황을 보면서 이외수의 소설 <들개> 속 미스 강이 떠올랐다. 이 소녀가 더 자라서는 그 미스 강처럼 될 것만 같았다. 왠지 모르게 그럴 것만 같았다. 

모든 남자라고 해도 좋을까 모르겠지만 대게의 남자들은 이쁜 딸에 대한 로망을 갖고 산다. 대를 잇는다는 개념이 확실히 희미해진 요즘이라면 더욱 결혼과 무관하게 남자는 착한 딸을 예쁘게 키우고 싶어진다. 그런데 이 소설 속 소녀는 그런 착한 딸의 가능성은 매우 적다. 착하기는 커녕 못되고 괴팍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불행하다. 행복했던 순간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불쌍한 아이다. 어린시절 불쌍하지만 그래도 착한 소녀들이 왕자를 만나 행복해지는 일들을 나이 먹어서도 테레비에서 실컫 감상하고 있는데 이 소녀에게는 그럴 가능성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다. 

친엄마가 아닌 진짜 엄마라는 참 낯선 개념을 제시한 이 소설은 처음부터 소녀와 행복을 유리시켜 놓고 있다. 학교를 다녀본 적 없고, 출생신고조차 되지 않은 이 소녀를 불행하다고 말하기는 정말 쉽다. 정작 소녀도 행복을 목표하지 않았다. 친엄마가 아닌 진짜 엄마를 찾는 대단히 철학적 동기를 가진 것이 어쩌면 이 소녀의 진정한 불행일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은 행복하지 않아서 불행하기보다는 불행이 두려워 불행해지는 것이 아니던가.

3..
문학이라는 것은 한편으로는 참 잔혹한 짓이라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서른살인 이 소설의 작가는 이 불행한 소녀의 뒤를 밟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불행한 상상을 했을까 싶은 마음에 글을 쓴다는 것이 참 못할 짓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책 뒤의 추천사 중 누군가 톨스토이의 문학론을 인용했다. 그것을 다시 인용해보자. 

"예술가의 사명은 논쟁의 여지가 없도록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삶에 애착을 지니게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과연 이 소설을 읽고나서 독자인 나는 내 삶에 애착을 가질 수 있을까 반문하게 된다. 이 불행한 소녀의 일이 비록 소설이라는 유리 속에 갇혀 있지만 이런 것도 카타르시스할 정도로 나는 야비한가 되묻게 된다. 그러면서도 문학이라는 것이 3분 혹은 길어야 5분짜리 대중가요보다 더 나은 것이 무엇인가 항상 불신하면서도 여전히 소설이나 시를 뒤적이는 미확정의 태도도 문제긴 하다. 

4.
소녀가 만났던 사람 중에서 상식 선에서 가장 진짜 아빠 같았던 달수 삼촌과 헤어지던 소녀의 독백은 참 감각적이었고 적절했다.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했던 많은 진짜 엄마가 아닌가 생각됐던 황금다방의 장미언니, 역에서 만나 소녀를 극진히 보살폈던 식당 할머니 그리고 폐가에 숨어살던 사내 등과 헤어질 때 없었던 독백이었다. 

"삼촌이 머뭇거리더니 나를 꼭 껴안았다. 그리고 주문처럼, 나쁜 사람 만나지 말라고, 누구에게도 붙잡히지 말라고, 미안하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중얼거렸다. 삼촌과 나 사이에 끼인 까만 비닐봉지에서 서걱서걱, 마음 구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달수 삼촌과 헤어질 무렵 소녀는 초경을 경험한다. 그리고 더 이상은 어른들에게 보호받는 일도 없어진다. 그 지점이 참 아련하다.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좋은 어른들에게 보호받던 소녀가 하필 그 즈음에 또래들과 어울리게 되는 전환점이 된다. 그리고 진정 불행한 일을 겪게 된다. 어쩌면 황금다방을 나올 때부터 잠재의식을 지배했던 불길한 예감일지도 모를 결말이기도 하지만. 끝내 자기 이름을 갖지 못하고 불행에 갇혀버린 것은 소녀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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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흠...흠...
    내용이 불행한.........그런 소설은 읽고 싶어지지가 않아요 저는 ㅜㅜ

깜박 속은 개고생을 유혹하는 말 "삶은 어차피..."

Posted by 탁발
2010.07.24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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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수필은 지루하다. 게다가 선문답스러운 의미까지 담기면 호감은 가면서도 선뜻 손에 들게 되지 않게 된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을 서점에서 우연히 봤다면 단연코 먼저 짚거나 읽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서평단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덤덤히 책장을 넘겼다가 시쳇말로 빵터진 귀절로 인해 흥미를 갖고 계속해서 읽어갈 수 있었다.  


'하늘에 물들다'라는 제목이 붙은 글의 끝부분의 고사성어 때문이었다. 음만 적자면 대단히 낭패가 될 수밖에 없는 글이다. 여인음수 냉난자지. 한자는 다소 작게 인쇄되어 습관처럼 음만 읽었다가 퍼뜩 " 아 이 스님이 땡초신가?"싶었다. 그러나 한자를 대하자 그런 오해는 금세 풀렸다. 如人飮水 冷暖自知. 풀어 말하자면 '물이 차고 더운 것을 마셔 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오해는 풀렸으나 이 현진이란 점잖은 법명 뒤에 숨겨진 스님의 장난기를 느낄 수 있어서 친구라도 삼은 듯 즐거워졌다. 

그렇지만 그런 장난기는 뒤로 가도 좀처럼 찾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어려운 말 써놓은 것도 아니고 잠결에 들어 이내 흘려버린다 하더라도 크게 아쉽지는 않은 평범한 이야기들을 덤덤히 읽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종이장에 침묻지 않도록 조심조심 읽다가 문득 여행을 가고 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커다란 제목을 달아 세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하늘에 물들다' '시간의 수레바퀴' 그리고 '내일과 다음 생 가운데'라는 근사한 제목이다. 그런데 그보다 지은이 혹은 편집자는 그 큰 제목 위에 또 작은 부제를 달아놓은 것에 어떤 의미를 남겨두지 않았나 싶다. 큰 제목들은 서로 따로인 듯 하지만 작은 부제들이 큰 제목들을 연결하는 새끼줄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책 내용과 상관없이 좀 있어 보이기 위한 창경궁 사진 한 컷. 


한걸음 걷고 하늘보기 - 또 한걸음 걷고 생가하기 - 다시 한걸음 걷고 그리워하기. 수수한 점층 수법의 이 부제들로 인해서 낱장의 심상들을 흩어지지 않게 꼭 묶어두는 것 같았다. 그 걷고 걷고가 자꾸 이 책 군데군데 떠남을 자극하는 티베트 사진과 힘을 보태서 여행을 자극하는 것이다. 그렇게 정처없이 걷는 여행은 겉보기와 달리 여행자 자신에게는 개고생인 법이다. 이외수 초기 작품인 꿈꾸는 식물에서 따오자면 "보는 사람에게는 낭만이지만 하는 사람에게는 다리 아픈" 것이 걷는 여행이다. 

엄홍길 대장쯤 되지 않고서는 그런 개고생 여행에 쉬지 않고 씩씩하게 전진 또 전진할 중생은 없을 것이다. 자연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쉴 틈을 찾기 마련이고, 어느 한적한 마을 당산나무 아래에 서면 괜히 폼잡고 가부좌라도 틀고 싶어진다. 그때 이 책을 딱 꺼내들고 몇 장 넘기면 발이 다소 저려와도 가부좌를 풀지 않고 버티게 해줄 것 같다. 
 

날이 사정없이 덥다. 이런 삼복더위에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절대로 현명한 일은 아니다. 태어나길 책사라면 몰라도 운동도 필요하고, 복날 닭이나 멍멍이를 괴롭힐 줄 아는 속된 나로서는 굳이 여름 더위를 이기자면 무협지나 추리소설 쪽을 택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중간쯤에서 이 책을 내려놨다. 속되긴 해도 끈기는 있어 책을 읽다가 멈추는 법은 없는데, 대략 중간쯤에서 읽기를 중단했다. 그리고 이번 주말 하다못해 가까운 산이라도 올라 마저 읽기로 다짐한다. 

비록 여행은 아직 형편이 되지 않지만 적어도 한걸음 걷고, 또 한걸음 걷도 다시 한걸음 걷고난 후에 나머지를 읽어봐야 이 현진스님의 멋을 비슷하게나마 흉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나저나 이 삼복더위에 산을 오를라면 그것도 참 개까지는 아니어도 강아지 고생은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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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24 07:59
    비밀댓글입니다
    • 뭐가 떨어져나갔을까나...
      뭐죠?
  1. 인상깊은 책이셨나 봐요. ^^
    • 솔직히는 질투가 났어요.티베트...꼭 가고 싶은 곳이라서요. ㅎ
  2. 아하...저도 사실 수필은 그닥 좋아하지 않아서...

    하지만 이 글을 읽으니 관심이 가지네요
  3. 당신의 블로그를 감사 읽기 정말 좋아하는

녹슨 아메리카 드림의 처절한 리포트

Posted by 탁발
2010.07.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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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 아메리칸 러스트  필립 마이어 지음, 최용준 옮김 / 올 


책 표지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550쪽 정도의 아주 긴 소설이라면 뭔가 강렬한 호객성 데코레이션을 쓸 법도 한데, 녹가루가 떨어진 낡은 정 한 자루를 큼지막하게 배치한 표지는 적어도 두 가지에 대한 암시 혹은 경고를 담고 있을 거란 생각을 들게 했다. 그 한 가지는 이 소설이 시간 때우기에 적합한 눈요깃감을 제공하지는 않을 거란 불길한 예감이었고 다른 하나는 뭔가 거칠게 가슴을 파고 들 것이라는 인상이었다. 그 예감과 짐작은 잘 들어맞았다.  

아메리칸 드림이 유효기간 지난 특별상품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아직도 제3세계 어디에는 유일한 돌파구쯤으로 여기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한국인 몇 퍼센트쯔은 그 꿈을 꾸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소설 초입에도 간단하게 언급하는 이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아주 신랄한 리포트가 바로 아메리칸 러스트이다. 미국에서 대단한 센세이션을 일으킨 작품이라지만 사실 한국 정서와는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선입견은 내게 아집이었을 수도)는데 의외로 책장 넘기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계속 읽어가면서도 차마 미국이라는 배경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아메리칸 러스트의 배경 도시는 비참한 꼴을 감추지 못한다. 아주 젊은이와 아주 늙은이만 사는 도시. 얼핏 우리 농촌을 떠오르게 하지만 이 소설의 배경인 뷰엘이라는 곳은 오히려 태백 등을 떠오르게 한다. 한국 기업을 모두 국영으로 아는 무식함이 눈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그런 오해에 대해서 조금은 용서할 수밖에 없도록 망해버린 철강도시의 우울한 풍경들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아메리칸 러스트는 크게 여섯 명의 인물을 핸드 카메라를 들고 따로 따로 쫓아가는 컬트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간혹 그 인물들이 같은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지만 여전히 소설의 화자는 그들을 공간적으로 유리시킨다. 그것은 작가의 의도가 아니라 그들이 겪는 심각한 소외를 외면하지 못한 치밀한 묘사라는 점이 놀라울 뿐이다. 소설은 일인칭과 삼인칭의 변화 속에서 독백과 묘사를 반복하는데 그렇게 시점이 변화해도 자주 그 변화를 놓칠 정도로 소설 속 화자가 누가 되었건 덤덤하다. 


살인과 도주 그리고 또 다른 살인으로 결말지어지는 사건만 쫓는다면 이 소설은 몇 번을 읽어도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다. 그런 사건 따위는 마치 시간을 알려주는 알람 정도로 여기는 것이 좋다.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인 포와 아이작, 아이작의 누나 리와 헨리, 포의 어머니 그레이스와 불필요한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보다 나은 경찰서장 헤리스. 이 여섯 명 중 삶의 모습이 다른 것은 예일대를 졸업해 부자와 결혼한 리 하나뿐이다. 나머지 다른 사람들 모두는 같은 도시에 살뿐더러 직업이 뭐든 크게 다를 바 없는 칙칙한 색깔의 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마치 책 표지의 낡은 정에서 떨어져나온 녹가루는 그 도시에 아직도 살아야 하는 모든 주민들을 상징하는 것처럼 등장인물 모두는 참 측은하다. 그런데 묘하게 공감이 된다. 대학조차 진학하지 못한 천재소년 아이작, 아이작보다 덩치는 두 배지만 머리는 그 절반도 안되는 포 그리고 미인에다가 머리까지 좋아 일찍부터 상류사회에 진입한 아이작의 누나 리. 이런 간력한 프로필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다. 이 어울리지 않는 세 사람은 친구, 옛 애인 등으로 또 얽혀 있고 그것은 우발적 살인과 은닉으로 한번 더 엮이게 된다. 


그 속에서 인간에 대한 희망이란 것을 발견할 수도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결코 아메리칸 러스트의 최종 추출물은 아닐 것이다. 한편으로 희망이라는 것은 현실의 절망을 인정하는 말이다. 희망이 발견될수록 현재의 절망요소를 그만큼 더 인식하게 된다. 그런데 아메리칸 러스트의 결말은 550쪽의 긴 책장을 넘기면서 포와 아이작에게 이입된 독자에게 해피엔딩을 달콤한 사탕을 준 것같은데 그 사탕이 다 녹기도 전에 그것이 희망이 아닌 또 다른 절망임을 알게 될 것이다.  


고백컨데, 이 소설을 가능한 빠르게 읽고자 했다. 그 의욕은 책에게 버텨내지 못하고 촘촘히 읽게 됐다. 또한 가능하면 앞으로 최소한 한 번은 더 정독해야 할 용기를 갖게 한다. 번역문학이라 문장이 주는 맛이 없다는 것이 큰 아쉬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정말 집요하게 파고드는 마치 여러사람이 각자 발언하는 듯한 6중주의 하모니를 더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아니 그런 도전을 자극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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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14 08:17
    비밀댓글입니다
    • 여름에 더위와 싸우기에 참 적합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 2010.07.14 08:27
    비밀댓글입니다
    • 좋은 책은 많죠. 뭐든 읽는 건 특히 블로거에게 큰 도움이 될 거에요. ㅎㅎ
  1. 아...왠지 머리가 아플듯한 소설이라는 기분이 ㅎㅎㅎ
    • 음...그렇게 느낀 건 순전히 제 탓입니다.
      생각보다 술술 넘어갑니다. ㅎㅎ

20년만에 다시 산 시집

Posted by 탁발
2010.06.13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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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낡은 기억 들추기 - 3
 






나의 젊은시절의 많은 시간은 김수영의 시를 읽는데 썼다. 세월이 지난 후에 돌이켜봐도 다른 어떤 시간보다 만족스럽다. 하도 옆구리에 끼고 다녀서 겉장이 너덜너덜해지는 바람에 같은 시집을 몇 번씩 다시 사야 했는데, 간혹 사귀게 되던 여자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여자랑 팔짱을 죽어도 끼지 못하는 나는 김수영 시집을 핑계로 내세웠던 탓이다. 그러다가 누군가 그렇게 애지중지 하는 김수영의 시에 반가워하거나 하면 아낌없이 내주기도 했다. 그런 바람에 김수영 시집을 많이 살 수밖에 없었다.

세월이 흘러 김수영도 생활에 뒤쳐지고 시도 문학도 모두 그러하였다. 그렇다고 와이셔츠와 넥타이에 매여산 것도 아니고 예술계에 줄곧 머무르면서도 그렇게 되었다. 그러나 물 속에서도 갈증을 느끼듯이 김수영과 몇몇의 시인들은 술에 몹시 취한 날이면 모질게 떠난 여자처럼 머리 속에 떠올랐다.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 지경의 나는 서가의 책들을 노끈으로 묶어 창고에 처박아두었다. 읽지도 않는 책은 전시용일 뿐이고 읽지 않는다고 책을 작부 신세로 만들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창고 어딘가에 김수영의 시집이 분명 있을테지만 굳이 먼지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 온라인 주문으로 하나를 구입키로 했다. 아침무렵에 주문했는데 저녁쯤에 배달이 된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태만한 중국집보다 나은 배달이었다. 기분이 좋았다. 오랫만에 김수영 시를 대하는 것도 그런데, 다음날쯤으로 생각했던 책이 도착하니 더 반가웠다. 1시간만 앉아있다가 일어나야 한다는 친구가 어디선가 전화를 받고 "야, 오늘 제껴도 된다. 코 삐뚤어지게 푸자!"할 때 덤으로 얻어지는 시간의 기쁨처럼. 

박스를 뜯어 책 중간을 아무렇게나 펼쳤다.아참, 나는 책을 읽는 못된 습관이 있다. 머릿말을 읽지 않는다. 그리고 옛날 시집들 끝에 꼭 집어넣는 해설을 죽어도 읽지 않았다. 반 영어 반 한글의 빨간책(오해하지 마시라. 과거 영어공부 좀 한다는 친구들이 지니고 다녔던 문고판 영어소설)도 아니고 적어도 시라면 나만의 감각과 고민으로 이해하는 것이 무조건 옳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태도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게 펼치니 190쪽이다. 김수영의 시가 대체로 그렇지만 절묘하게도 현재를 무지 아프게 꼬집는다. 
푸른 하늘을..이란 시다.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김수영이 이 시를 쓴 것이 1960년 6월 15일이다. 지금으로부터 꼬박 50년전이다. 그때로부터 그많은 시간이 흘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유롭다고 한다. 돈이 없어 그렇지 세상은 살 만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김수영 식으로 말하자면 무엇이 있어야 살 만한 세상은 살 만한 세상이 아니다. 말장난같지만 자유에 대해서 엄격했던 김수영은 몇 퍼센트의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모두 자유롭다고 하지만 이 시를 읽자니 문득 자유라는 말이 봉인에서 풀려나는 기분이 든다.

21세기 서울은 더 이상 자유라는 단어를 부러워할 시인도 없고, 그것을 보고 피 없이 무슨 자유!라며 힐난할 시인도 없다. 63년에 죽은 김수영에게 부끄럽고 또 부럽기도 한 2010년이다. 계발서가 호객하는 서점가에서 문득 자기 자신이 잘못 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한번이라도 든 적 있다면 김수영의 시에 머리를 파묻어보기 바란다. 해답은 찾지 못하겠지만 해답을 찾고자 하는 열정은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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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6.13 15:38
    비밀댓글입니다
    • 플룻부는여자
    • 2010.06.13 18:38 신고
    예전에는 달달한 시만 좋았더랫는데...
    제가 나이를 먹은건지 아님 생각이 자랏는지....좋네요~~
    • 김수영 시도 달달한 것들이 있죠.
      달달하다 못해 뜨거운 것도 ㅎㅎ
  1. 책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으나, 요즘들어 드문드문 읽고 있습니다. ^^
    김수영님의 시에 관심이 없었으나, 말씀하신 부분들은 상당히 공감이 갑니다.
    이제 조금씩.. 고민하며 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34살이 되어서야 말이죠.
    • 몇 살에 고민하느냐는 별문제가 아니겠죠.
      오히려 몇 살까지 고민하냐가...
      책을 잘 읽지 않다가 죄 짓는 마음이 자꾸 드네요.
      좀 읽어야겠네요. ㅎㅎ;
    • 출판 비수기인 월드컵 시즌에도.. 한권 읽어주세요.
      축구관련 서적이라도.....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