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운전사. 김사복 씨 우리도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Posted by 탁발
2017.08.03 09:59 티비가요/영화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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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낡은 택시가 우리를 가본 적 없는 그곳, 그때로 데려갔다. 그리고 글로 보았던 그 주먹밥을, 그 순박한 정을 손으로 만지는 것처럼 느낄 수 있게 했다. 두 시간 조금 더. 우리는 송강호의 등을 타고 805월의 광주를 간다. 그렇게 휘- 돌아와서 끝내 그를 다시 만나지 못한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안타까움에 전이되어 내내 보고 있던 그 김사복 씨가 보고 싶어진다.

 

37년 전의 광주. 그곳에 일을 우리는 다 알지 못한다. 광주시민이라는 이름이 하도 커서 그저 버겁게만 느껴졌던 것이 지난 시간 동안 겪었던 광주의 중압감이었다. 그리고 알지도 못한 채 쉐타 속에, 때로는 여자친구의 옷 속에 감춰서 이리저리 옮겨야 했던 그 광주의 영상들이 비로소 어떻게 광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함께 본 누군가는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다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걸 보여줬어야 하지 않나? 라고 했다. 그가 말하는 새로운 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던 차에 정말로 어디선가 택시 무리가 하고 등장한 것처럼 데이트 중인 한 쌍의 대화가 우리들의 심드렁한 사이로 끼어들었다.

 

무슨 소리야. 5·18때 택시기사, 버스기사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걸 했는데. 그뿐인줄 알아? 광주가 피해를 넘어 민주화운동의 성지가 된 것은 그때 앞장섰던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잘난 사람들이 아니라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사람들이 전부 주인공이었고, 영웅이었다고!”

 

그들의 이야기를 녹음하지 못한 탓에 슬그머니 미화된 부분도 없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난 20대 중반이 채 못됐을 젊은 여성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깜짝 놀라서 내가 아는 광주를 다룬 소설가 누군가 싶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 여성의 놀랍고 반가운 설교(?) 덕분에 동행의 자극적 욕망은 머쓱해졌고 자연스럽게 대화에서 쫓겨났다. 다행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드러내지 않은 나의 고민이었을지도 모른다. 37년이 흘렀다. 해마다 5월이 되면 광주를 말했고, 그래서 뭔가 대단히 많은 것들을 한 것 같은 생각이 들게 된다. 싫증을 잘 내는 우리들은 쉽게 “또 광주야?”라고 무신경하게 말을 할 수도 있다. 어떻게 다른 일들을 광주에 비교나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고통은 원근에 충실하다. 멀어지면 둔감해지는 법이다.

 


그러니 동행이 뭔가 새로운 것이 없다고 입맛을 다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아니 내가 먼저 말할 기회를 놓쳤다 뿐이지 내게도 같은 마음이 없었다고 자신하지는 못할 것 같다. 그 부분은 관객인 나와 또 다른 제작자들 몫의 비밀로 남겨두기로 한다.

 

허나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택시운전사>는 꼭 볼 만한 영화이고, 많지는 않지만 광주를 다룬 영화들과는 조금 다른 광주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아니 광주보다 광주사람을 보여주었다. 독일기자와 서울기사의 시선에서 본 광주사람이지만 우리 모두도 그 외부인의 시선일 수밖에 없으니 오히려 안성맞춤이다.

 

그런데 우리가 외부인이 아닌 것은 이 영화의 주제 언저리 이야기였다. 차단된 그 도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바깥세상은 몰랐다. 그러나 뭔가를 아주 많이 보도한 것은 언론이었다. 그때 언론은 진실이 자기 신문사를 망하게 하고, 자신도 망가뜨릴 것이라는 공포 때문이었다고 할 것이다. 37년이 흘렀다. 지금 우리는 그토록 암울하지는 않지만 진실을 말하는 언론을 보고 있는 걸까? 하는 의식의 질문에 화들짝 놀랐다.

 

무슨 소린가. 언론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도 밝혀냈고, 촛불혁명의 믿음직한 동반자 아니었는가. 그런가? 맞게 본 건지는 자신할 수 없지만 <택시운전사>를 보고 가장 질기게 남아 있는 인상은 순천쯤에선가 국수집에서 애먼 소리나 하고 있는 사람들의 대화에 속이 뒤집어진 송강호의 표정이었다. 그런가? 우리 언론은 어느 샌가 그렇게 믿음직하게 변해있었던가? 나만 몰랐나보다.

 

, 그리고. 송강호는 인터뷰를 통해 배우가 자신이 하는 연기의 의미 정도는 알고 해야 한다는 말을 했었다. <택시운전사> 속 배우들은 빠짐없이 그래 보였다. 그것도 영화 한 편의 충분한 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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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대신 무한도전을 보자? 그럴 만도 하다

Posted by 탁발
2017.07.30 23:36 티비가요/영화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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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흥행이 매우 뜨겁다개봉 4일 만에 300만 명을 돌파했다최대 흥행작인 <명량>과 같은 수준이라고 한다그러나 논란도 그만큼 뜨겁다흥행과 논란이 동행하는 요즘 드문 경우라 할 수 있다논란은 영화 자체에도영화 밖에서도 생겨났다일단 영화 바깥의 논란은 차치하고 영화 속 논란부터 이야기해보자. <군함도영화 자체에 대한 논란을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는 글이 있다.

 

"CJ는 '군함도내리고 차라리 '배달의 무도 하시마섬극장편을 올려라"

 

트위터에서 2만번가량 리트윗되고, 7천이 넘는 '좋아요'를 받은 글이다왜 이런 반응이 나왔을까감독과 영화에 참여한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을지 모르겠으나 <군함도>를 보고 나온 사람들은 대체로 지옥섬이라는 일본의 강제징용의 역사가 아니라 그냥 어떤 섬에서의 탈출에 대한 감상을 말한다왜 이 영화 제목이 하시마도지옥섬도 아닌 군함도인지를 어렴풋이 수긍하게 된다역사의 상처를 다룬 영화에서 '역사'를 보지 못했다면 심각한 것이다.

 

그리고 문제의 양비론 문제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위기물론 소위 부역자들이 더 나쁜 놈인 경우도 있다그러나 그런 미시적 사실을 통해 일제강점역사를 포괄하는 것은 위험한 접근이다부역자친일파는 전범 일본과 마찬가지로 처벌해야 할 대상인 것은 틀림없지만 그들의 잘못은 일제강점에 의한 부차적 산물로 구분해야 한다이 차이를 무시하면 양비론이 생기는 것이며식민사관에 휘말릴 수 있다.

 

예를 들자배우 이정현이 "일본이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지 않아서 마음에 들어요"라고 했다그렇다면 누군가 5월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에 대해서 "신군부가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지 않아서 마음에 들었어요"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반응은 지금보다 더 거셀 것이다. 그러나 송강호는 <택시운전사>를 끝내고 "광주시민에게 위로를 드리고 싶다"고 했다.  

 

하시마섬에서 무슨 일이 있었든 사실 여부를 떠나 영화 속 사건을 만들고묘사하는 것은 창작자의 자유의지에 달려있다그러나 역사의 본질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군함도는 아직 진행 중인 역사이기 때문이다. 또한 피해자가 아직 생존해 있고, 희생자들을 찾지도 못했다. 일본은 전혀 반성하는 기미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감독은 이 영화의 배경과 역사를 놓치고 영화 자체에 몰입한 것 같다는 추측을 갖게 한다충분히 그럴 수 있다그것이 감독으로서의 본분이기도 하고동시에 한계일 것이다낡은 표현이지만 역사를 잃고 영화를 얻었다.

 

류승완 감독은 논란이 커지자 자신의 입장을 글로 전했다그의 글 속에는 역사를 모른다는 비판에 아파하는 심기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그리고 자신도 몰랐겠지만 논란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는 대목도 있었다아니 스스로 논란의 이유를 조목조목 밝힌 것 같아 보였다.

 

"저는 제가 취재한 사실을 기반으로 당시 조선인 강제징용의 참상과 일제의 만행그리고 일제에 기생했던 친일파들의 반인륜적인 행위를 다루고자 했습니다더불어 영화를 통해서라도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피맺힌 한을 '대탈출'이라는 컨셉으로 풀어보고 싶었습니다"

 

류 감독이 하시마섬의 역사에 분노했다는 사실은 틀림없어 보인다다만 분노의 대상을 혼돈한 우를 범했고둘째 '대탈출'이라는 블록버스터 지향의 아이디어로 인해 역사보다 영화에 더 몰두하게 된 것 같다영화감독으로서는 당연한 충실함이었지만 이 영화에 대한 모든 기대를 수용하기에는 지나친 몰두였다. 블록버스터에 강제징용의 본질이 잠식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늦은 설명이지만군함도는 일본 나가사키에서도 대단히 각광 받는 관광지가 됐다사전 예약이 필수일 정도라고 한다.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우리에게 아픔이고분노인 그곳이 일본인들에게는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란다이 모순이 존재하는 한 하시마는 영화의 논리가 먼저일 수는 없는 것 아니었을까아무리 상업영화일지라도 말이다그렇다면 억울하다는 말은 말자.



지난 2월 민족문제연구소의 스토리펀딩이 있었다. 2천만원이 목표였으나 그 절반 정도만 모아졌다. 그 펀딩의 제목은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이었고, 민족문제연구소가 추진하는 식민지역사박물관 중에 강제동원관을 설치하는 비용으로 사용하려는 목적이었다. 이미 종료된 펀딩이지만 혹시라도 관심을 갖는 분이 있다면 이 책과 더 나아가 민족문제연구소에 노크를 해보기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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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조정래 감독에 대한 추억

Posted by 탁발
2016.03.02 04:32 티비가요/영화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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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일에 볼까 했지만 기왕이면 3.1절에 보기로 하고 식구들 모두에게 예고를 했다. 귀향의 돌풍이 예고된 바 있어서 굳이 서두르지 않아도 좋을 것이라는 예상이 맞았다. 그렇지만 극장에 들어가서는 놀라야 했다.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관객이 객석을 채웠고, 그들 속에는 나이 어린 학생들 모습이 많아 더 뭉클했다.

 

깊지는 않으나 조정래 감독과는 오래 전의 인연이 있었다. 영화판이 아니라 길소리 판소리판이었다. 2002년 즈음 인사동에는 일요일이면 젊은 소리꾼들이 자진해서 모여 지나는 시민들을 끌어 모았다. 그런 소리꾼들 사이에 사람 좋은 표정으로 추임새를 넣는 고수 한 명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귀향의 감독 조정래였다.

 

소리를 전공한 사람이 아닌 일반인이 북장단을 맞추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판소리계에는 1고수 2명창이라는 말도 전한다. 그만큼 한국전통음악에 대한 애정과 열의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그 애정은 국악 클레이 애니메이션 ‘동화세상’을 제작하는 결과까지 이어졌다. 이후 연락이 끊겼다가 많은 시간이 흐른 뒤 화제의 영화 귀향의 감독이라는 사실을 남을 통해 들으니 소회가 새삼스럽고 괜히 미안하기도 했다.

 


어쨌든 그 기억 속의 조정래 감독의 따뜻한 인상은 영화에 그대로 담겼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 귀향을 너무 무거울까봐, 너무 슬플까봐 걱정스러워 보기가 두렵다는 말을 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물론 14살, 15살의 어린소녀들의 지옥을 보는 일이니 즐거울 수는 없다. 계속해서 분노하게 되고, 그 분노는 또 슬픔이 된다. 그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영화가 다 끝난 후에는 오히려 그 모든 감정들이 따뜻한 무엇으로 결합되는 기분이 들었다. 여전히 가슴에는 분노와 슬픔이 소용돌이치고 있지만 이 영화가 가고자 하는 마지막 지점은 분노와 슬픔보다는 포스터의 두 소녀들처럼 따뜻하게 손잡고 가자는 것 같다. 마지막 장면에서의 슬프면서 따뜻했던 대사가 그랬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무겁지만은 않고 그래도 미소를 지을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 가능했었을 것이다.

 

사실 귀향에 대해서 워낙 많은 글들이 나오고 있기도 하고, 워낙 영화는 보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이번에도 귀향은 그저 보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했었다. 그렇지만 흐릿한 기억 속의 선한 웃음의 그 청년 조정래를 한 번 더 칭찬하고 싶어졌다. 특히 지금까지도 국악에 대한 애정이 여전함에 뿌듯했다.

 


이제 조정래 감독은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아니 더 중요하고 힘 있는 영화감독이 되기를 바란다.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 같은 영화가 더 이상 나오지 못하고 있는 한국영화판에 조정래 감독에게서 그 희망을 보게 된다. 얼마 전 심하게 망한 판소리 영화 도리화가가 떠오른다.

 

만약 조정래 감독에게 그 영화를 맡겼다면 결과는 다를 수 있었을 것이다. 흥행까지는 몰라도 판소리의 맛과 멋 그리고 그 한까지 제대로 필름 속에 담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단지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귀향의 장면 하나는 모처럼 소녀들이 물가에 발을 담그고 쉴 때 부른 노래였다. 상당히 현대적인 ‘가시리’였다. 그 장면을 보면서 문득 강권순의 ‘산천초목’이 떠올랐다. 그러나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일 뿐이다.

 

어쨌든 영화 귀향은 개인적으로는 오래 전에 알던 사람을 만나는 일이었다. 듣고도 쉬이 믿지 못할 14년의 집념까지는 사실 몰랐지만 영화를 계속할 사람이었기에 언젠가 극장서 그의 작품을 보게 될까 기대하다가 잊고 말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영화를 만들었다. 그것도 꼭 필요한 때에 딱 맞춰서 말이다. 운이라고 결코 말할 수 없는 신념의 결과일 것이다. 그 조정래가 귀향이 끝난 후에도 좋은 영화를 더 많이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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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자. 임순례 감독이 던지는 또 한 번의 질문 “너 행복하니?”

Posted by 탁발
2014.09.19 07:30 티비가요/영화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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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게 모르게 922일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손석희의 jtbc 뉴스9이 세상을 놀래킬 개편을 맞는 첫 날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jtbc 뉴스룸이라는 이름으로 뉴스의 새장을 여는 것이다. 이 뉴스룸 티저광고는 이틀만에 조회수가 10만을 넘길 정도로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것은 분명 언론인 손석희의 힘이자, 진실의 힘이고, 진실에 대한 갈망일 것이다.

 

jtbc 뉴스룸은 미드팬들을 열광시켰던 뉴스룸을 연상케 한다. 미드 뉴스룸은 언론인들이 진실을 위해서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고 전력투구하는지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드라마다. 손석희의 뉴스룸도 그러하리라 조금도 의심치 않게 되는데, 그 카피가 너무도 인상적이다. “진실이 뉴스가 됩니다라고 한다. 시청자에 대한 약속인 동시에 진실을 외면하고 있는 다른 모든 뉴스들에 대한 지독한 우월감을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멋있다.

 


그런 차에 다가오는 102일 또 다른 진실의 추적이 시작된다. 10년 전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가짜 줄기세포 사건. 지금은 이름만 남아있을 뿐인 문화방송 PD수첩이 국익이라는 거대한 압력에 주눅들지 않고 오로지 진실 하나에 목적을 둔 추적으로 밝혀낸 사건이었다. 엄청난 진실을 파헤친 PD수첩은 그러나 영웅이 되지 못했다. 국익과 진실이라는 사실 비교될 수 없는 두 개의 가치가 정면충돌을 일으킨 것이다.

 

임순례 감독이 오랜만에 메가폰을 잡은 영화 제보자는 박해일과 유연석 그리고 이경영이 진실의 회오리를 재연한다. 10년 전의 줄기세포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참 언론인의 모습을 쫓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줄기세포 사건을 추적했던 PD수첩은 영화 속에서 피디추적이라는 이름으로 바뀐다. 당시에 탐사 프로그램의 양대 산맥을 이뤘던 추적60분과 합성한 이름이다. 참 고민 없이 지었다 싶지만 한편으로는 요즘 사라진 탐사 프로그램에 대한 갈증이 나은 결과라 여겨진다.

 

워낙 유명하고 충격적이고 논란이 컸던 사건인지라 10년이 지났어도 당시의 상황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제보자는 굳이 보지 않더라도 내용은 이미 다 알고 있다. ‘도가니부러진 화살처럼 해당 사건을 처음 접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란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기다리게 되는 것은 진실과 그것에 목숨 거는 진짜 언론인의 향수를 채우기 위함일 것이다.

 


뉴스다운 뉴스, 신문다운 신문이 없어진 시대에도 매체 영향력이니, 매체 신뢰도니 하는 것들이 조사되고 발표된다. 나름 흥미롭기는 하지만 그만한 코미디가 없다는 것이 함정이다. 그런 속에 손석희의 뉴스룸에 거는 기대나 영화 제보자를 기다리는 마음은 똑같다. 만일 지금 시대의 언론이 정론의 길을 걷고 있다면 이런 영화를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영화가 탄생한 것부터가 이 시대 언론의 성적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이 시대 국민들에게도 과거 와이키키 브러더스의 명대사처럼 지금 행복하니?”라는 아픈 질문을 다시 한 번 던지고자 하는 임순례 감독의 화법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반성은커녕 자조조차 잃어버린 언론인들에게 자발적 저널리즘을 통해 함께 행복해지는 이상을 말하고자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크게 흥행되기를 바란다. 진짜로 진실이 뉴스가 되는 세상은 손석희 혼자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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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덕분에 제보자라는 뉴스를 알게 되었군요.
    개막일이 제 생일 다음날인데...꼭 챙겨봐야 되겠어요 ㅎ
    • 생일선물로 극장표라도 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
  2. 진실이 뉴스가 된다는 말이 가슴을 울리네요.
    • 참 시기적절한 카피라고 생각됩니다. 그만큼 통렬하고 아픕니다.

루시. 최민식이 한국관객에게만 준 특별한 선물

Posted by 탁발
2014.09.04 07:00 티비가요/영화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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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루시의 미스터 장 역할을 일본인이나 혹은 중국인이 했다면 한국관객들도 세계 다른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초반에 조금은 애를 먹었을 것이다. 우선 최민식은 애써 영어를 쓰지 않는다. 게다가 스칼렛 요한슨과 만나는 영화 초반에는 자막조차 나오지 않는다. 한국 관객이야 한국어 대사에다가 오랫동안 귀에 익은 최민식의 목소리이니 귀에 쏙쏙 들어오지만 한국인이 아닌 다른 국가의 관객들은 도대체 저 남자가 무슨 말을 하나 답답했을 것이다. 마치 그 자리에 잡혀온 루시처럼 말이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미국에서 건너온 영화를 보면서 처음 느끼는 묘한 쾌감이었다. 우리가 한류스타라며 외국 진출 연예인들을 특별하게 치켜세워주는 경향에 지나친 면이 있지만 그렇지도 않은 최민식은 첫 해외 진출에 지금껏 누구도 하지 못했던 아주 특별한 선물을 그의 팬들인 한국 관객들에게 주었다. 물론 이것은 감독인 뢱베송의 연출적 장치로 만들어진 상황이기는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미스터 장을 최민식이 하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던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한국인 외의 관객들에게는 갑갑증을 주었을 그 짜릿한 장면들이 지나도 그 여운은 길게 갔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 여운이 주는 부작용도 없지는 않다. 아니 그것과 상관없는 아쉬움이라고 해야 더 옳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최민식의 분량이다. 한국어 선물에 대한 반대급부라고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생각보다 아니 욕심보다 최민식의 분량은 많지 않았다. 깐깐한 요리사가 저울에 달듯이 꼭 필요한 분량만 재서 나온 것 같이 짠 분량이었다. 그 얘기는 이 영화 루시는 한 마디로 스칼렛 요한슨이 북 치고 장구 치고 다했다는 말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아쉬움은 단지 최민식에 대한 애정의 발로라고 여겨도 좋을 것 같다. 심지어 영화 자체의 러닝타임도 90분으로 무척 짧은 편에 속하니 그 갈증은 더욱 크게 느껴진다.

 

또한 최민식, 스칼렛 요한슨 그리고 뢱베송이라는 이름에 대한 신뢰로 인해 영화 내용에 대해서 깊이 알아보지 않고 극장을 찾은 사람이라면 영화를 보는 종종 고개를 갸우뚱하는 순간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느닷없이 다큐멘터리적인 장면이 나오는가 하면, 다른 영화에서 본 듯한 장면들이 태연하게 흐르는 것이다. 심지어 도저히 피해갈 수 없는 유사함일 수밖에 없는 이티(E.T)의 오마주도 등장한다.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극과 극을 달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분명 SF물이다. 기껏해야 두뇌의 10%만을 쓰는 인간이 우연하게 100%를 쓰게 되면서 겪게 되는 아주 빠른 진화를 다루고 있다. 허무맹랑한 주제를 다루는 것은 영화의 특권이라지만 루시의 경우는 그 어지간한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인이 아닌 다른 관객들에게는 루시는 두 개의 낯선 구조를 갖고 있는 셈이다. 최민식의 한국어 연기와 이 영화가 패러디물인가에 대한 조금은 소극적인 의심이다. 다행히 우리는 최민식의 한국어가 낯설기는커녕 반갑고 익숙하다.

 

추석을 앞두고 루시는 만만치 않은 한국영화 두 편과 대결을 벌여야 한다. 타짜와는 근소한 차이를 보였으니 아직은 순위를 매기기에는 부족하다. 좀 더 두고볼 필요가 있다. 반면 탈세로 큰 위기를 맞은 송혜교 주연의 두근두근 내 인생은 의외로 1위를 달렸다. 그래도 역시 큰 차이는 아니지만 위기 속에 거둔 성적이라 이제 입소문이 어떻게 나느냐에 달렸다. 경쟁해야 할 세 영화가 모두 색깔차이가 선명해서 영화팬이라면 다 보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1700만을 기록한 명량의 기세를 등에 업은 최민식의 루시가 조금은 유리해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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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무. 미치고 싶을 정도로 무섭고 슬픈 영화

Posted by 탁발
2014.08.15 08:07 티비가요/영화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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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의 상황에서의 인간의 본성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고, 조금도 인간적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저 비극적이나 단순히 사고였다. 그러나 점점 이 사고는 사건으로 모습을 바꿨다. 그와 함께 사람들은 더 이상 사람의 모습이 아닌 짐승이 되었고, 단지 사느냐 죽이냐의 광기의 게임에 빠져들었다. 밀항이라는 것 자체가 극도로 위험한 일이기에 있을 법한 사건이지만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사건을 다룬 영화 해무가 주는 충격은 충격을 넘어 절망의 수준을 경험케 한다.

 

이 영화는 우선 스포일러에 매우 취약할 것 같다. 그래서 가급적 사전 정보가 적은 상태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래야 영화가 끝날 때까지 몰아치는 몰입의 상황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며, 극장을 나오면서부터 겪게 되는 의문과 아쉬움도 놓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에 대해서 의견이 크게 갈리는 편이지만 적어도 상영시간 동안에는 다른 생각 없이 영화에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이 미덕이자 이 영화의 힘이다. 다만 그 몰입이 끝난 후에 남는 의문들이 평가를 가를 수 있다는 것이 약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약점은 근본적으로 영화에 있겠지만 어쩌면 관객 스스로에게서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바로 박유천과 한예리의 러브신이다. 이것이 사전에 홍보로 많이 쓰인 부작용일 수 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듯이 사람들의 입을 탄 영화 내용은 훼손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사실 박유천과 한예리의 베드신은 결코 흥행을 노릴 만한 대목이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19금 영화임에도 그리 짧게 처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박유천의 인터뷰가 참 옳다. 박유천은 한예리와 베드신을 찍으며 슬펐다고 밝혔다. 맞다. 그 상황의 두 남녀의 갑작스런 베드신은 욕정도, 사랑도 아닌 슬픔이었다. 도망치고 싶지만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는 극한의 공포 그리고 절망이 그들을 사랑하게 만들었다. 그 절망과 슬픔의 크기를 얼마큼 인정하고 수용하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관객마저 미치고 싶을 정도로 무섭고 슬픈 감정에 사로잡힌 상황, 그것에 의심을 갖게 된다면 해무는 동기가 매우 부족한 영화로 전락하게 되고 만다.

 


그래서 미리 조언을 하자면, 박유천과 한예리의 베드신에 어떤 우려도, 기대도 갖지 말라는 것이다. 이 영화의 장점인 광기적 몰입에 그저 몸을 맡긴 채 베드신마저 대할 수 있다면 이 영화에 대한 암초 하나를 무사히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겨우 하나의 광기를 해결했을 뿐이다. 아직 또 하나의 암초가 남는다. 동식 이외의 광기, 동식과의 대립하는 광기에 대한 설득력이 남아있다.

 

그냥 뱃놈이기에 그렇다는 결코 아니다. 그들이 인간의 본성을 드러낸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본성을 잃은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몫이라고 하더라도, 전진호 선장과 선원들이 조금씩은 다른 광기에 빠져드는 것에 대한 설명 혹은 장치가 만족할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전혀 이해 못할 상황은 아니고, 누구라도 그 상황에 제정신일 수 없다는 것도 틀림없지만 그래도 영화적 설명은 다소 미흡했다. 그렇지만 아마도 감독이 의도한 것은 절망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 해무는 명량, 해적에 이은 올 여름 바다 시리즈의 종결로 반드시 볼 만한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명량이 비장함을, 해적이 웃음을 줬다면 해무는 비통함을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장 김윤석 이하 여섯 명의 연기 열전이 핵심적인 감상 포인트다. 과연 김윤석이 선장역이 아니었다면 해무가 가능했을까 싶은 생각도 무리가 아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연기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온 박유천이 이처럼 험한 역할을 잘해낼까 우려도 있었지만 백퍼센트 칭찬은 어려워도 좋은 연기를 소화해냈다.

 

한예리는 과거 드라마 로드 넘버원에서 이미 멋진 조선족 사투리와 연기를 인정받은 바 있다. 오히려 다른 배우들의 사투리가 살짝 부족한 생각이 들 정도로 한예리의 사투리 개인기는 훌륭했다. 그러나 사투리는 연기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일 뿐이다. 그 외에도 문성근, 김상호, 이희준 모두 자기 포지션을 잘 지켜냈다. 감독이 제안한 제각각의 광기를 배우들은 매우 충실하게 소화해낸 것이다. 특히 경구 역의 유승목에게 가장 눈길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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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음.... 시사회를 본 사람들의 평이 대체로 좋지 않은 것 같길래 이 영화는 개봉관에서 안 보기로 결심했던 것인데, 의외로 동료 블로거님들의 평이 매우 괜찮네요. 시사회 관람평 중에 가장 웃겼던 내용은 "내가 어제 산에 갔다가 뱀에 물렸는데, 오늘 관람한 이 영화는 뱀에 물린 것보다도 더한 재앙이었다"나요 ㅎㅎㅎ 그런데 블로거님들의 포스팅 몇 편을 읽으니 오히려 관심이 확 끌리네요. 전 스포일러를 싫어하지 않고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라... 내용을 대략 알고 보면 더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 스포일러를 좋아하신다니...역시 독특하십니다. ^^
      분명 불만스러운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볼 만한 한 편의 영화인 것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김윤석의 황해에 이어서 다시 주목해야만 하는 문제적 영화가 아닐까 싶네요.

해적. 크게 웃다가 반하게 되는 영화

Posted by 탁발
2014.08.08 07:57 티비가요/영화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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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의 흥행이 무섭다. 흥행에 관한 모든 기록을 갈아치울 기세다. 물론 그 이면에 스크린 독과점은 옥에 티로 남고 있지만 그래도 이 영화에 대한 요즘 사람들의 열망을 식게 하지는 못할 것 같다. 명량은 아주 오랫동안 우리가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패배감, 절망감 등에서 벗어날 잠깐의 해방을 누리게 해준다. 최민식의 전혀 다른 이순신의 거친 해석이 주는 묘한 동질감까지 더해져 명량은 333척의 왜적선을 물리친 것만큼이나 거센 기세로 스크린을 잠식해가고 있다.

 

그렇게 명량에 의해서 한국 극장가가 평정되어가는 그 정점인 86일 손예진, 김남길의 해적이 개봉했다. 아마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맞대결이었을 것이다. 하정우, 강동원의 군도는 명량이 개봉되기 전 일주일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지만 개봉 후 일주일이 지나도록 예매율 70%를 지키고 있는 명량과 힘겨루기를 해야만 하는 해적은 참 불운하다. 또 일주일 후에 개봉되는 해무는 어떨지 걱정이 앞서는 상황이다. 명량의 선전은 놀랍고도 축하할 일이지만 그것이 또 다른 한국영화에게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마저 빼앗아버리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다.

 


어쨌든 해적을 보러갔다. 우선 명량보다 여성관객수가 좀 더 많아 보였다. 그리고 위화도 회군의 비장한 전반부를 지난 뒤로는 객석에서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명량이 그토록 무겁고 침통한 분위기였음을 미리 알았던 것처럼 해적은 처음부터 끝까지 골계의 미학을 지탱했다. 신비할 정도의 선남선녀 김남길, 손예진은 물론이고 관객 웃기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는 유해진, 박철민, 신정근, 김원해, 조달환 등은 나름 숨죽일 만한 웅장한 전투신 속에서도 웃기기를 멈추지 않는다. 특히 음파 유해진의 웃음 폭탄에는 단단히 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적이 단지 웃기는 영화라고 단정 짓는다면 오해다. 이 코믹한 분위기 속에 감독은 위화도회군 즉 성공한 쿠데타인 조선건국에 대한 풍자와 해학의 시선을 곁들였다. 고래 뱃속의 옥새를 찾기 위한 일대 해프닝은 그 자체로 조선에 대한 냉소가 담겨져 있다. 그래서 마지막에 이성계의 침실에 잠입한 김남길이 남긴 한마디는 이순신의 명언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의미를 갖는다.

 


국새가 없어진 것은 더 이상 명나라에 관여 말고 조선에 더 힘쓰라는 뜻이 아니겠소. 짐승인 고래도 자기 자식을 지키려고 하는데 왕이란 자가 국새 때문에 백성을 죽인단 말이오 예나 지금이나 권력자들은 하늘의 뜻, 백성의 바람을 모르기는 매 한가지인가 보다.

 

이 말에 해당되는 것이 어디 이성계뿐이며, 조선뿐이겠는가. 해적이 냉소적이고, 무게 잡고 말하지 않아서 그렇지 이 영화 자체가 권력을 쥔 자에 대한 경고와 훈계가 담겨져 있다. 그렇지만 그 부분을 간단히 처리한 것은 이 영화가 두 마리 토끼를 다 쫓지는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일 것이다. 너무 가벼워지는 것을 방지하는 차원의 주제의식이었을 뿐 해적은 그저 볼거리 많고, 쉴 새 없이 웃게 해서 관객을 즐겁게 하는 것이 전부인 영화다.

 


그래서 명량이 없었다면 너무 가볍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명량이 하도 무거워 오히려 해적이 중화시켜주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그것으로 스크린을 독과점과 동가교환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의미 없는 가정이겠지만 명량과 해적이 스크린수에서 비슷한 수준으로 갈 수만 있다면 참 좋은 극단의 영화 두 편의 동행을 볼 수 있었을 거란 아쉬움은 남는다. 어쨌든 통 웃을 일이 없었던 우리들, 특히 어둡고 침통했던 올 한해 극장이라는 작은 공간에서라도 실컷 웃고 싶다면 이 영화 해적을 선택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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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녕하세요.

    '해적'은 '이경영'의 악인에 대한 품격을 보여 주어서 아주 좋았습니다.

    '이경영'의 냉혹함,단호함,부하(손예진)에 대한 연민등 '이경영'의 연기 관록을 잘 살린 점도 '해적'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라스트 씬에서 보여준 눈빛 연기는 90년대 '이경영'의 전성시기 시대에 보여준 연민 가득한 눈빛과

    오버랩 되면서 개인적으로 '이경영'이 역활에 대한 더 폭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 주고 있었서 앞으로 '이경영'의

    행보가 기대 됩니다.

    그리고 역시 '김남길' 캐스팅은 '해적'에서 신의 한수...

    '손예진'과의 연애설 때문에 캐스팅하기가 힘들 수 있었지만,

    '김남길'이 사극에서 보여준 아우라가 '장사정'에게 입체적인 인물로 부여한 모습도 인상적입니다.




명량. 그래도 이 영화는 꼭 봐야 한다

Posted by 탁발
2014.07.31 07:25 티비가요/영화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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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은 뒤로가기를 선택하십시오.

 

명량을 다 보고 극장을 나오면서 든 생각은 어떻게 지킨 나라인데였다. 명량해전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전적으로 조선 아니 이순신의 완벽한 승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다 본 후에 이상하게도 승리의 감격보다는 착잡함이 더 컸다. 그 원인은 아무래도 우리가 발 딛고 사는 현재가 승리에 도취할 여유를 허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명량이 하필 진도 앞바다인 것이다. 반면에 승리는 싸운 자에게만 돌아오는 특권이라는 교훈을 얻게 된다.

 

12척 대 333척의 대결. 무슨 삼국지의 장판교 대결도 아니고 이순신의 명량대첩은 그를 따르던 장수들마저 믿지 못할 대결이었다. 일단 역사는 따로 보기로 하고 영화에 충실하자면 꼴랑 12척 중에서도 이순신의 배를 제외한 나머지 장수들은 물돌목 한참 뒤에서 일단 꽁무니를 빼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울돌목(명량)의 회오리를 이용해 이겼다고 간단히 암기하고 있지만 그 물길이 용케도 조선군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 울돌목의 거센 회오리는 아군이나 왜군 모두에게 위험한 요소였다는 것이다. 또한 왜군 역시 눈이 있으니 당연히 명량의 물길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단지 그것을 승리의 무기로 활용할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이 이순신에게 있었음을 이 영화는 말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순신은 명량대전에 앞서 두려움이 없었을까? 그렇지는 않다. 이 영화의 명대사 중 하나에 그 인간적인 면이 숨겨져 있었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그 용기는 백배 천배 큰 용기로 배가되어 나타날 것이다

 

담담히 자신의 두려움을 고백하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려운 말이 아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을 문다는 말과 비슷할 것이다. 도망칠 곳이 있을 때에는 그 두려움은 도피에 집중하지만 도망칠 곳이 없는 막다른 곳에서는 어쩔 수 없이 천적에게도 덤비는 것이 무릇 살아있는 생물의 본능일 것이다. 이순신은 장수와 병사들에게 출전 전야 비장하게 외쳤다.

 

살 곳도 없고, 물러설 곳도 없다

 


그리고 마침내 12척의 조선수군과 333척의 왜군 수군은 명량에서 만났다. 조선수군은 결국 이순신 혼자 싸우면서 멀리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나머지 수군들을 일깨웠고, 왜군은 두려움 대신 자신들의 군세에 방심하고 서두른 탓에 패배를 안게 됐다. 군세가 아무리 압도적이라 할지라도 이순신이라는 이름 앞에는 무용지물이 되고만 것이다.

 

그러나 이순신이라는 대영웅에서 시선을 조금 돌려 영화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명량대전의 길고 긴 격투신은 너무 디테일해서 실감은 충분히 얻을 수 있지만 대신 조금은 지루한 감을 줄 수도 있다. 그리고 전쟁신의 대미를 장식하는 결정적 장면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런 정도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사라질 뻔한 위기에서 구해낸 일대영웅의 일전을 들여다본다는 사실만으로 극복할 수 있다.

 

전투의 결정적 장면은 부족한 감이 없지 않지만 대신 신파는 꽤나 강력했다. 해적출신 적장 구루지마(류승룡)은 압도적인 군세에도 불구하고 이순신을 저격하기 위한 암수를 준비했다. 그것을 막는 과정에 이 영화에서 단 한 마디의 대사도 없는 이정현과 남편 진구의 존재감이 폭발하는 시점이 만들어진다. , 이거 신판데 하면서도 눈물을 참기는 어렵다. 이순신의 명량해전은 그 의미만으로도 너무 압도적이어서 자잘한 감동이 끼어들 틈이 없지만 이 대목으로 어느 정도의 완충이 가능했다.

 


또한 최민식이 정말 나무랄 데 없는 완벽한 이순신의 연기를 해냈다는 믿음에는 추호의 의심도 없지만 전투가 너무 길어서 이순신 아니 최민식에게서 시선이 분산된 아쉬움도 없지 않다. 이순신이라는 대영웅을 역사에 모실 수 있었던 우리들에게는 이마저도 감격스러운 일이지만 이순신보다 이 영화의 제목처럼 명량에 더 무게를 둔 것이 불가피했을지는 몰라도 해신 이순신을 좀 더 알고 싶었던 관객에게는 아쉬울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최민식의 연기에 대한 갈망이 가져온 투정일 수도 있으니 미리 실망할 필요는 전혀 없다.

 

어쨌든 여름을 맞아 대작 한국영화가 연달아 개봉하고 있어 영화팬으로서는 행복한 비명을 지를 지경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기대했던 명량은 소문난 잔치치고는 먹을 것이 많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편식에 주의할 필요는 있다. 감독에게 명량해전이 주는 무게가 너무 큰 나머지 인물들이 다소 흐릿해지면서 해상전투가 너무 짙어져 균형은 만족스럽다고 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어쨌든 이 영화는 한국인이라면 꼭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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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번엔 탁발님이 먼저 보셨군요 ㅎㅎ 저는 아직입니다.
    조만간 가서 보려고요^^
    • 저도 부지런을 떨 때가 있답니다...ㅎㅎ
      꼭 보고 오셔요~

도희야. 극단의 상처에 갇혀 있던 14살 소녀의 위험한 도전

Posted by 탁발
2014.05.23 07:01 티비가요/영화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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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리 감독의 <도희야>가 칸에서 상영되자 10분여의 기립박수가 이어졌고, 그런 여파로 프랑스에서 개봉이 확정되었다고 한다. 흐뭇한 일이다. 그런 소식들이 한국관객을 더 많이 움직여서 이 영화 흥행에도 불씨가 될 수 있다면 더 좋은 일이 될 것이다.

 

우선 정주리 감독의 제작노트가 새삼스러운 충격을 주었다. 고양이와 주인의 비극쯤으로 제목을 붙일 수 있는 짧은 일화는 애정결핍과 일방향 소통이 주는 위험을 단적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이 제작노트는 그대로 영화 <도희야>의 소녀 선도희에게 투영된다. 이 소녀는 지금까지의 수많은 피해자와는 다르다. 도희에게는 참 많은 상징들이 담겨져 있어 영화가 끝난 후부터 이 소녀에 대한 생각은 더 깊어지게 된다.

 


이 영화는 여러 가지 소외에 대한, 또한 그로 인한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생모는 도망가고 의붓아버지 용하와 살게 된 도희는 누군가에게 이름이 불리지 않는 아이다. 이 영화 예고편에 배두나가 고개를 돌리며 선도희 왜 이렇게 쫓아다녀?”하고 묻는 장면이 들어간 것은 이름을 부른다는 의미에 미리 방점을 찍고자 했던 감독의 바람이라 여겨진다. 사람이 사람에게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는 것은 인격의 소외이며, 폭력의 시작점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도희야>에는 우리 사회에 여전한 전형적인 폭력들이 등장한다. 전형적이라는 것은 이해가 빠를 수도 있지만 그로 인해 일종에 편견에 갇히게 되는 위험도 안고 있다. 그것은 폭력의 주체인 도희의 의붓아버지 용하에 대한 정체성에 대해서다. 노인만 사는 바닷가 동네에서 용하는 술만 마시면 개가 되는 놈이다. 그래서 쉽게 나쁜 놈으로 단정지을 수 있다. 또한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그 감정은 추호의 흔들림도 없다.

 


그 점이 영화가 끝난 후에 아쉬웠던 점이다. 그것은 어쩌면 박용하라는 인물 때문이 아니라 송새벽이라는 배우에 대한 감탄 때문일 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것은 숙제로 남겨둘 수밖에는 없다. 코믹했던 송새벽에 대한 인상은 이제 버려야 할 것 같다. 사실 박용하라는 캐릭터는 흔하다면 아주 흔할 수 있다. 그럼에도 송새벽의 박용하는 클리셰를 뚫어내는 분노와 두려움 그 두 가지 감정을 관객에게 원투 펀치로 안겨준다.

 

그랬기 때문에 14살 소녀의 대단히 위험한 선택을 납득하게 해준다. 그리고 배두나와 김새론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야 한다. 요즘 아역이 아역이 아닌 아이들이 몇 있지만 김새론은 조금 다른 아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새론은 아주 앙상한 체구를 가지고 있어서 선도희라는 역할에 그저 몸 자체로 표현이 다 될 정도다.

 

배우에게는 생긴 것도 연기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새론의 깡마르고 여윈 팔다리는 연기 이전에 선도희라는 소녀에 대한 설명을 이미 끝내버린다. 또한 알 듯 말 듯한 표정으로 선도희의 선택에 대한 선악의 판단을 휘저어버린다. 극단의 상처에 갇혀 있던 14살 소녀의 위대한 도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험한 도전이었다.

 


그리고 배두나. 이번 영화 <도희야>에의 배두나는 절제된 연기란 무엇인가를 제대로 보여준다. 워낙 박용하 역의 송새벽이나 도희 역의 김새론의 연기가 좀 강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영화와 인물들이 섞이게 한 것은 배두나의 침착한 연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배두나는 힘 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또 다른 폭력의 피해자이다. 그 점이 다르고 또한 의미 있다. 송새벽의 연기가 무수한 유리파편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배두나는 그것들을 꼼꼼히 모아 퍼즐을 맞추듯이 온전한 본래의 것을 돌려놓는다. 무표정함, 나약한 말투의 배두나는 이영남이 가진 상처와 권태를 일관되게 유지한다.

 

영화 <도희야>는 폭력에 노출된 한 소녀와 한 여자의 극적인 해법을 찾는다. 거기에 배두나, 김새론, 송새벽의 조합은 정말 단단하다. 딱히 자극적인 장면 없이도 시간은 아주 빨리 흐르고 만다. 거의 밤을 새다 시피 하고 첫 극장에 앉았지만 졸릴 틈 없이 엔딩을 맞을 수 있었다. 스포일러를 피한다는 것이 이 영화에 대해서 설명이 많이 부족한 결과가 됐지만 영화 <도희야>는 양심에 물을 주는 영화라는 것만은 분명하게 말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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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 우리에게 안녕을 묻는 영화 대자보

Posted by 탁발
2013.12.20 08:48 티비가요/영화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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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요즘 안녕하냐는 말의 새삼스러운 무게를 실감하고 있다. 보통 세상의 인사들이 아침이나 점심 등의 시간을 의미하지만 우리는 아침이고 점심이고 안녕하냐는 인사만 한다. 그리고 안녕했다. 그러다 한 대학생이 기억에도 가물거리는 대자보라는 낡은 방식의 호소에 그만 안녕이라는 환각에서 확 깨버렸다.

 

송강호의 변호인은 노무현에 대한 영화라기보다는 우리들에게 안녕하냐고 묻는 또 하나의 양심의 소리였다. 우리가 기억하는 20세기의 수많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대한 의미였다. 죽고 강한 것. 약하지만 산 것. 이 영화는 그렇게 정의와 진실의 의미를 규정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겪는 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 그와 함께 한 결코 길지 못했던 희망에 대한 영화다.

 

영화 속 송우석은 세상에 결코 말랑말랑하지 않다는 말 뒤에 숨어 그저 돈 잘 벌고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안녕한 지금의 우리들처럼 말이다. 그랬던 송 변호사를 진실의 대변인으로, 투사로 만든 것은 국밥집 아주머니와의 사소한 인연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돈만 잘 버는 속물 변호사를 그대로 살지 못하게 만든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국민을 국민으로 대하지 않는 그릇된 권력이었다. 그러면서 차츰 영화를 보는데도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안락하고 따뜻한 의자에 앉았음에도 뭔가 뼈마디가 결리고 오한도 느껴진다.

 


참 지겹다. 30년 전의 상황들이 지금도 변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지긋지긋하다.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그저 상징의 매개여야 할 일들이 여전한 현실이라는 것이 너무 무섭다. 도대체 언제까지 정의는 우리들에게 꿈이어야 하는가. 민주주의는, 국민이 국가고, 국민이 권력이라는 대한민국 헌법11항이 언제쯤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 될 것인가. 30년 전 사건에 눈물을 흘리고, 그 한 사람이 그리워 가슴을 쳐야 할까.

 

영화 속 변호인 송강호는 명불허전의 법정 연기를 보여준다. 속 후련하면서도, 든든한 변호사 선생님의 모습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아파지게 하는 명변론의 모습이다. 고문경찰로서는 역대 최강의 연기를 보였다고 할 수 있는 곽도원, 이런 영화에 정서적으로 가장 큰 비중이 큰 엄마 역할을 완벽하게 해낸 김영애, 아이돌답지 않게 용감하게 이런 영화에 출연해 고문피해자의 연기를 놀라울 정도로 소화해낸 임시완 등에 대한 인상도 강하게 남는다.

 


그리고 역시 송강호는 정말 무서운 배우다. 송강호가 아니었다면 누가 노무현과 전혀 다른 인상으로 노무현을 완벽하게 표현해낼 수 있을까 싶다. 그러나 이 명배우들의 열연을 그 자체로 감탄하기에는 영화가 담고 있는 진실의 무게가 너무 컸다. 그런 좋은 연기가 감탄만으로 남을 리는 없다. 분노다. 그 분노가 눈물도 되고, 그리움도 된다.

 

이 영화는 <부러진 화살> 때처럼 별점테러의 대상이 됐었다. 안녕하던 대중이 진실과 정의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칠 때, 또 누군가는 두려움에 떨기 마련이다. 별점테러가 별 힘을 쓰지 못하고 는 것은 역시나 죽은 것과 산 것의 차이일 것이다. 요즘 새삼스럽게 안녕하냐는 안부인사가 시대를 관통하는 화두가 됐다. 이 영화는 국민들에게 안녕하냐고 묻는 영화 대자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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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도 변호사 영화 꼭 볼 생각입니다.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