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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가요

이번주 <저널리즘 토크쇼 J>를 꼭 봐야 하는 이유. 언론이라는 혐한 공범자들

 

반일과 혐한은 한일 양국에 존재하는 국민감정이다. 그렇다면 이 둘은 같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12일 공개된 <저널리즘 토크쇼 J> 예고 불매운동 폄하부터 한국인 비하까지...언론이라는 혐한 공범자들에 압축된 내용은 현재 한일 간의 상황에서 일본 편을 들고 있는 한국 보수언론들의 친일 혹은 혐한 행각을 고발했다.

 


반일과 혐한은 결코 같은 수준의 감동이 아니다. 실례로 일본 극우파들은 자주 동경 거리에서 혐한 시위를 단행한다. 그들이 외치는 구호는 혐오와 증오로 가득 차 있다. 실제로 폭력을 가하기도 한다. 그것이 혐한이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시위는 없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가 매주 열리는 정도에 불과하다. 거기에서도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을 겨냥한 어떤 증오나 혐오 발언은 없다.

 

혐한을 풀어서 말하면 한국()을 혐오한다이다. 혐오란 단어는 반일의 반대와는 전혀 다르다. 반대가 소극적이고 방어적이라면 혐오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이다. 당연히 둘은 동급으로 취급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 것이다. 더군다나 혐한은 내버려 두면서 한국이 무도하게 공격 당하는 상황에서 불매운동 등 반일행동에 대해서 비판한다는 것은 비정상이자, 반국민적이다.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되찾기 위해 전재산과 목숨을 바쳐 투쟁하던 독립군에게 그래 봐야 쓸데없다고 말하던 친일 기득권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번 주 <저널리즘 토크쇼 J>에 출연한 역사학자 전우용의 발언 취지이다. 평소 보수언론을 보지 않는 이들이라면 아마도 이번 주 <저널리즘 토크쇼 J> 내용을 믿지 못할지 모른다.

 


오죽하면 <저널리즘 토크쇼 J>가 이들 언론에 대해서 해방 70, 여전히 남아있는 언론이라는 황국신민이라는 자막까지 써야만 했겠는가. 이는 요즘 유행하는 토착왜구라는 말 만큼이나 신랄하다. <저널리즘 토크쇼 J>가 왜 그랬는지 예고에 등장한 보수언론들의 기사 몇 개만 봐도 알 수 있다.

 

감정만 앞선 불매운동은 퇴행적이다” <중앙일보, 201978>

한일 청구권 협정은 포항제철, 경부고속도로의 밑천이 됐다” <조선일보, 201975>

한국의 과거사 정치는 일본제국 향수의 정치화를 자초했다” <중앙일보, 201978>

 

내용만 본다면 딱 일본 언론이 썼을 법한 기사들이 버젓이 한국의 유수 언론에 등장한 것이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아니 경제침공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흑자를 보는 나라가 적자를 보는 나라에 대한 무역 보복이라는 비정상적인 공격을 단행한 상황에서 피해를 보는 나라의 언론이 하는 행태라고는 믿을 수 없는 사대적이고, 굴욕적인 언사들이다.

 


이번 불매운동은 아직 초기단계에 불과하지만 조금씩의 효과를 보고 있다. 일본 맥주의 매출이 급감하고, 김포-시마네를 잇는 전세기 운항이 중단되었다. 한국 관광객으로 붐비던 동경의 한 까페는 한산해졌다. 국가의 위난 때마다 의병으로, 독립군으로 떨쳐나섰던 민족이 일본의 악질적인 공격과 도발을 그저 참고 있을 리 없다. 다만 이번 불매운동은 그 어떤 단체도 주도하지 않고 있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6년 촛불혁명이 그랬던 것처럼 시민들의 자발적인 제안과 동참으로 이루어진 행동일 뿐이다. 한국이 피해를 보고, 일본이 공격을 해서만이 아니라 현 상황에 대해서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하다면 당연한 대응인 것이다. 

 

이런 현상을 보고 퇴행적이라고 비하한다는 것은 아베 정권에 동조하는 일본 언론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본은 한국과만 싸우면 되지만 한국은 일본 그리고 한국 내 잔존하는 또 다른 혐한 세력과 싸워야 하는 상황이다. 언제고 다시 "천황만세"를 부르짖던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우리 내부의 적들을 알아야만 한다. 그래야 제대로 싸울 수 있다.  이번 주 <저널리즘 토크쇼 J>를 꼭 봐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