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에 충성하는 유일한 방법은 반역, 작전명 발키리

Posted by 탁발
2009.11.30 19:16 티비가요/영화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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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살육으로 몰아넣은 전범 히틀러에 대한 독일 내 암살시도는 총 15번이었다. 1945년 연합군에 의해서 베를린이 함락되고, 히틀러가 자살하기 9개월 전인 1944년 7월에 마지막으로 시도되었으나 실패한 쿠데타에 대한 영화  작전명 발키리. 이미 결과를 알고 보는 것에도 불구하고 관객 입장에서 픽션의 엔딩을 기대케 하는 영화이다.

특히 이 사건이 후대 역사에 특히 독일인에게 주는 의미는 각별하다. 비록 실패했으나 독일 내 저항운동의 큰 족적을 남긴 점에서 독일 국민이 기댈 수 있는 한가닥 양심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베를린의 독일저항기념비에 적힌 비문을 통해 그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당신들은 수치를 참지 않고 저항하였다.
자유와 정의 그리고 명예를 위해
스스로의 목숨을  희생하였다.

감독이 베를린 관광 중 비문을 읽고 영화를 구상했다고 하는데,  어쨌거나 역사를 바꾸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저항을 그린 이 영화를 통해 무수한 나치 잔혹사와는 또 다른 측면에서 독일의 비극을 느끼게 하였다.

유주얼 서스펙트라는 걸작을 만든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2008년 세상에 내놓은 영화 작전명 발키리는 영화관 관객보다는 dvd를 본 관객들에게 더 유리했던 작품이다. 원작에는 인물들에 대한 자막설명이 없어 사건에 대해 깊이 연구한 사람이 아니라면 영화를 쫓아가는데 불편함이 컸다고 한다. 

한편 이 영화는 독특하게도 모든 장면들을 실제 사건이 일어난 곳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히틀러의 별장, 볼프산체 나치통제소, 슈타우펜베르그의 처형장소 등등. 감독은 스토리와 인물의 전개보다 실존의 무게를 필름에 담고자 했는 지 모르겠다.



영화는 전황이 불리한 아프리카 전선의 슈타우펜베르그 대령의 일기로부터 시작된다. 잘 생긴 배우라고 말 하기에는 연기의 깊이가 더해가는 톰 크루즈가 맡았다. (실제 슈타우펜베르그도 잘 생긴 외모의 독일 귀족 출신이었다고 한다) 슈타우펜베르그는 전선에서 영국 공군의 공습에 오른손과 한 쪽 눈을 잃은 채 본국으로 귀환하여 반 히틀러 저항운동에 뛰어들게 된다. 이들이 히틀러를 암살하려는 궁극적인 목적은 연합군과의 패배 이전 휴전 협상이었다.

역사를 가정하는 것은 백 번 해도 무의미한 것이지만 역시나 이 영화를 보면 누구든 또 다시 어리석은 가정법의 문장을 써보게 될 것이다. 발키리 작전이 성공했다면 독일은 분단도 없었을 것이고, 패전 직전에 행해진 피비린내 나는 살육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발키리 작전에 뛰어든 그들은 또 다른 방법으로 그들의 조국 독일에 충성하는 방법을 찾았고, 그 유일한 선택은 아이러니하게도 반역이었다. 발키리 작전의 주체와 대상 모두의 머리 속에 충성이라는 같은 단어가 들었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방법이 달랐을 뿐이다.

고급장교들을 중심으로 수행된 작전인 만큼 발키리 작전은 치밀하게 준비되었다. 아쉽게도 독일 아니 유럽의 역사를 크게 바꿔 놓을 수 있었던 작전은 운명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을 잡지 못했다. 더운 날씨로 인해 히틀러는 좀 더 쾌적한 곳으로 회의장소를 바꾸었기 때문이었다. 역사가 크게 갈린 이유치고는 참 허무하다.

슈타우펜베르그가 가져간 폭탄은 밀폐된 기존 벙커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파괴력이 떨어졌다. 또한 흥분한 히틀러가 책상을 치느라 넘어진 가방을 다른 장교가 바로 세우면서 바깥쪽으로 옮기는 바람에 타격을 줄였다. 거기다가 허무하게도, 작전을 각종 부대에 전달하는 통신대를 장악하지 못한 것도 커다란 불찰이었다. 쿠데타 상황 중 양쪽의 명령이 빗발치는 속에서 통신대가 자의적으로 슈타우펜베르그 쪽의 명령을 차단했던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히틀러의 생존에도 불구하고 쿠데타는 조금 더 성공의 가능성을 가져갈 수 있었다.


결국 작전에 가담했던 저항세력들은 모두 처형당하고 만다. 주인공 슈타우펜베르그도 그의 나이 37살에 독일만세를 외치며 총살 당했다. 그의 가족들은 사건 후 강제수용소에 끌려갔으며, 자녀들은 이름까지 바꾸게 했다. 종전 직전 처형장으로 끌려가던 중 부인 니나 슈타우펜베르그는 극적으로 풀려났다고 한다. 

 반전의 교과서로 불리우는 유주얼 서스펙트을 만든 감독이 반전은커녕  다큐같기도 한 영화지만 긴장감에서는 여느 스릴러물에 버금간다. 특히 일제강점과 기나긴 독재의 역사를 안고 사는 우리들에게 저항과 반역이라는 주제는 느긋히 의자 등받이에 기댈 수 없는 고민을 던지기도 한다.

감독이 50년 전 실패한 쿠데타 혹은 저항운동을 통해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무엇일까? 냉전도 역사의 먼지를 뒤집어쓴 지 이미 오래고, 일부 독재국가가 존재하지만 표면상 인류는 딱히 저항해야 할 대상 없이 사는 것 같다. 그런 평화(?)로운 지구에 작전명 발키리가 긴장으로 다가서는 것은 역사에 대한 지나친 감정이입일까? 그것은 각자 판단할 일이다.  그러나 역사 공부나 하자고 이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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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방 치우는 장면이 기억나는군요. 역사를 알면서도 픽션을 기대하게하는 영화..동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