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가는 길. 어린 소녀와 어른 소녀의 같은 기다림

Posted by 탁발
2016.09.30 05:19 티비가요/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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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 많은 최수아는 그립다는 말 대신에 올 사람이 없는 기다림을 선택하고는 휴대폰에 저장된 그의 이름을 누구 아빠에서 서도우 아니 공항을 바꿨다. 이 모든 일의 발단이라고 할 수 있는 애니의 말이 시차를 두고 오버랩된다. “그리운 게 얼마나 좋은 건데. 기다리기만 하면 되잖아”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고. 만날 거니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정작 그렇게 말한 어린 소녀는 황량한 들판을 바라보며 한 시간 동안 오라고도 하지 않았고, 갈 생각도 못한 아빠를 기다렸다. 그것이 친아빠든 새 아빠든 어린 소녀의 그리움은, 아무도 오지 않을 기다림은 어린 여자애가 감당할 수 없는 쓸쓸함이었다. 그래서 반은 틀렸다.

 

당신이 나에게 바람 부는 강변을 보여주면은 나는 거기서 얼마든지 쓰러지는 갈대의 자세를 보여주겠습니다 (황동규. 기도 중에서)

 

그 어린 소녀가 들판에 서서 어딘가를 응시하고, 사진을 찍는 모습에 시 한 편이 떠올랐다. 어린 소녀에게 너무 어려운 감정을 이입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럽지만 이 소녀는 또 다른 어른 소녀 최수아로 발전되는 감정이기에 아주 불가능한 연상은 아닐 거라 위안한다.

 


그래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은 사랑하는 이가 반드시 감당해야 할 무게지만 기다릴 사람이 있고, 언제까지라도 기다릴 만큼 사랑하는 것도 이 팍팍한 세상이라면 아닌 게 아니라 “얼마나 좋은 건”지 모를 축복이라고 할 수 있으니 반은 맞다. 그렇게 어린 소녀와 어른 소녀는 같은 기다림의 병을 앓았다.

 

그리고 서도우의 그리움도 그렇다. 뭔가 말하지 않은 것을 가슴 깊이 감춘 채 세상을 떠난 딸. 그 딸이 자신에게 말하지 못한 비밀의 통로를 뒤늦게 따라 걷는 아빠의 심정은 어떠한가. 서도우의 한 발짝, 거기에 겹쳐지는 은우의 또 한 발짝마다 가슴의 통증이 커져갔다. 비밀스러워서 차마 열기가 두렵기도 한 허술한 나무문을 연 아빠의 눈은 크게 흔들렸다. 아무것도 없는 들판이었다.

 

딸이 매주 토요일마다 그렇게 외롭게 서서 응시했을 들판에 아빠 서도우도 섰다. 같이 서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뒤늦게 딸이 보았을 어딘가를 찾는 아빠의 시선이 참 슬프다. 아주 오랫동안 어린 딸을 들판에 혼자 세워둔 자신이 너무 밉다. 기다린다고 말 한 마디 해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모든 건 어른 잘못이니까.

 


공항 가는 길 4회는 여전히 흔들리지 않고 혼탁한 세상에서 잊고 지나고 있는 가을 서정을 쌓아갔다. 그런데 여기서 잠시. 그곳에 도착했을 때부터 공방을 나와 들판에 선 후까지. 이것은 절대로 드라마를 위한 헌팅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드라마의 내용 다 없다 치더라도 애니와 서도우가 비슷한 곳에 서는 모습만으로 눈물이 왈칵 쏟아질 서정을 쏟아냈다.

 

그렇게 사람과 감정이 만나 이토록 시린 풍경을 완성할 수 있었다. 언제까지 이 걸음을 유지할 수 있을는지는 알 수 없지만 4회까지의 <공항 가는 길>은 드라마가 아니라 시였고, 금세라도 물이 뚝 떨어질 것 같은 수채화였다. 그 시 안에서, 그림 안에서 사람이 움직이고 마음이 돌아다녔다. 어른의 감정도 얼마나 깊고 섬세하고 또 순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화였다.

 

어른이라는 단어 뒤에 따라 붙는 모든 오염된 것들이 모두 걸러지는 느낌이 들게 한다. 이 드라마를 그래봤자 불륜이라고 코웃음치고 외면하는 사람들은 겪지 못할 정화다. 카타르시스다. 서도우와 최수아가 어떻게 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로를 대하는 그 조심스러운 눈길과 태도에 더 눈길이 간다. 더 드세고, 더 자극적이어야 하는 드라마들의 치열한 경쟁에서 한발 뒤로 물러선 여유마저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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