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의 앵커브리핑. 도마도 그랬다. 하물며 사람이라면

Posted by 탁발
2017.02.22 03:25 티비가요/미디어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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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점을 초월한 인류의 죄를 구하러 이 땅에 왔다는 예수. 그에게는 열둘의 제자가 있었다. 그들 중에는 신약의 한 부분을 담당할 정도로 성공(?)한 경우도 있지만 두고두고 믿음이 약한 존재로 낙인이 찍힌 제자도 존재한다. 신과 인간의 관계도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전날 예기치 않은 현학적 논쟁을 벌인 뉴스룸의 손석희 앵커는 뒤끝(?)을 보였다. 정치는 특히 질곡이 심한 한국의 정치사는 듣기 좋은 말로 얼버무릴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참 다행인 뒤끝이기도 했다. 아니었다면 참 많이 찜찜하고 또 뒤숭숭했을 것이다. 

 

그런데 손석희 앵커는 낯설게도 신계에서 비유를 찾아왔다. 이 날의 브리핑 제목은 ‘합리적 의심...하물며 도마도 그랬다’였다. 구원을 주고받는 신과 인간의 관계에서 의심은 결코 좋은 결과를 남기지 못했다. 돌아보지 말라는 간단한 금기를 어긴 자는 소금기둥이 되기도 했다. 

 

죽을 것이고, 다시 부활할 것이라 약속까지 했지만 제자 도마는 그것을 믿지 못했다. 신앙의 영역이라면 도마는 썩 칭찬받을 신도의 모습은 아니다. 그래서 의심이 많은 이를 흔히 도마에 비유하는 일도 있지만 사실 도마는 억울하다. 의심하고, 질문하고 또 확인하고자 한 것이 왜 잘못된 것인지 답답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손석희 앵커는 그리고 JTBC에 걸린 가짜소송, 가짜뉴스를 예를 들었다. 이른바 탈진실의 시대(POST-TRUTH)를 언급했다. 미국에서는 대안적 진실이라는 궤변까지 등장했으니 탈진실의 시대가 아니라고는 하지 못할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 시대라면 도마는 오히려 대안이 될 모델이 아닐까?

 


거짓과 선택적 진실이 넘쳐나는 탈진실의 홍수 속에서 도대체 도마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합리적 의심이라도 갖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방법은 없을 것이다. 물론 여전히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복되다”는 강한 믿음을 유지하는 사람들의 사는 법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 의심은 일종의 생존의 도구라 한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제자라는 사람이 스승이자 구원자인 신을 의심했는데 하물며 사람이라면 더 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이 된다.

 

선의와 통섭. 대통령 탄핵과 특검연장이라는 주제에 더는 추가가 필요치 않은 상황에 끼어든 참 낯설고 불편한 단어들. 그 단어를 애써 주장하는 이가 과연 정치인인지 아니면 새로운 종교를 설파하고자 하는 것인지 종종 헛갈릴 지경이었는데 그나마 하루 뒤에 사과를 했지만 그것은 자신의 소신이라는 뒤끝을 남겼다. 사과인지 아닌지 헛갈리는 것은 선의가 없는 탓이겠거니 하고 만다. 

 

갈릴레이의 오마주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과연 이 정치인의 소신이 한국의 근현대사의 한 대목이라도 제대로 해석할 수 있을지는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 또한 작년부터 현재까지 우리는 국정농단이라는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권력의 일탈 상황과 싸워오고 있다. 아니 다 떠나서 304명의 생명을 그대로 죽게 만든 그 야만을 어떻게 의심이 아닌 선의로 대할 수 있겠는가. 교황조차도 유가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고 했다. 하물며 사람이라면 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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