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동의 톡투유.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

Posted by 탁발
2017.01.23 06:29 티비가요/예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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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의 톡투유는 세상에서 없는 토크 프로그램이다. 비슷하게 시도됐던 힐링캠프가 견디지 못했던 것을 보면 결코 쉽지만은 않은 포맷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그것은 말 잘하는 김제동을 자주 할 말 없게 만드는 청중들의 이야기.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를 말하고, 듣고 그래서 함께 웃고 또 함께 울게 되는 그런 풍경들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장점은 엄마다.

 


그렇게 웃고 울리는 이야기들은 사람들의 다른 얼굴만큼이나 다양하지만 그래도 그중 가장 빈도수가 높은 것은 역시나 엄마와 자식들의 이야기다. 일요일이 일주일의 시작일 수도 있고, 마지막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톡투유가 일요일의 마지막 방송인 것만은 분명한데 그 시간이 이처럼 촉촉해질 수 있는 것은 참 들어도 들어도 그 감동이 줄지 않는 그 이야기들 때문이다.

 

보통은 자식들이 먼저 손을 든다. 그리고 톡투유 신청 이유가 애초에 엄마 때문이라는 말들을 거의 공통적으로 하는 모습들이다. 그리고 개성에 따라 엄마 이야기를 한다. 평소에 하지 않던 말을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 그 말을 듣는 엄마들은 다들 하나같이 눈물을 흘리고, 그런 자식과 엄마 사이에 흐르는 그 사소한 정감들을 보며 또 따라서 눈물을 흘리게 된다.

 

그러나 분명 그러고 싶었지만 결국 손을 들지 못하고 그저 남의 이야기만 듣다가 풀이 죽어 돌아가는 자식들이 있을 것이지만 그래도 아마 엄마는 그 자식의 마음을 알았을 것만 같다. 22일의 방송에서도 참 여러 가족들의 이야기가 다른 듯 같게 소개되었다. 그런 그들의 말 중에서 참 잊히지 않는 대목이 있었다.

 


재수 한 언니, 삼수한 본인 그리고 단번에 대학에 합격한 동생으로 인해 5년 동안 줄곧 수험생 뒷바라지를 해야 했던 엄마. 말로만 들어도 그 고생과 조바심이 가뭄에 갈라진 논밭 같음을 알 수 있는데 그 엄마가 했다는 말이었다.

 

“엄마가 최순실이 아니어서 미안하다”

 

그것이 옳지 않음을 알지만, 모두 분노하고 있지만 사실 세상 모든 엄마들은 최순실이 되고 싶을 것이다. 지탄의 대상이 되어도 자기 자식에게 그렇게 세상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싶은 그 맹목적인 사랑을 모를 수 없다. 물론 그엄마는 최순실이 됐어도 최순실과 같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말이 그럴 뿐이다. 그런 엄마가 자식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세상은 뭔가 잘못된 것이다.

 

이 날의 톡투유 주제는 숟가락이었다. 요즘이라면 누구나 일감으로 수저계급론을 떠올릴 수밖에는 없고, 그런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패널인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는 흙수저는 사실은 스텐레스 수저라고 애써 긍정적인 이야기를 했지만 현실에서 겪는 많은 일들을 다 위로하지는 못할 것이다. 말 몇 마디로 해소될 사태가 아니지 않겠는가.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가 흘러 톡투유가 끝마칠 때가 됐다. 그때 노래가 들려왔다. 그룹 디어 클라우드의 노래 ‘엄마의 편지’였다. 그 노래 중 한 줄의 가사에 사로잡혀야 했다.

 

“세상에 나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은 첫째인 너를 가진 일”

 

참 소박하지만 위대한 고백이었다. 엄마가 자식에게 꾸밈없이 가슴 그대로를 드러낸 말. 이 말에 긴 사족을 달아봐야 쓸데없다. 그 엄마의 자식으로 태어나지 않은 내가 없기 때문이다. 김제동의 톡투유는 늘 이렇다. 엄마들이 좋아하는 이유가 너무도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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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 문재인 지지했다고 돌연 출연금지. 또 하나의 블랙리스트?

Posted by 탁발
2017.01.19 06:14 시사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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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구속이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특검은 김기춘 전 청와대비서실장과 현 조윤선 문화체육부 장관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오랜 공방 끝에 실체를 드러낸 문화예술인 대상의 블랙리스트 때문이다. 블랙리스트는 위헌이다. 헌법과 법률을 수호해야 할 정부가 위헌을 저지른 것은 단순한 불법의 차원을 넘는 심각한 문제이다.

 


늦었지만 다행으로 문화부 블랙리스트가 세상에 알려진 이상 더 이상 이 은밀하고, 졸렬한 블랙리스트는 위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블랙리스트가 모두 사라졌을까?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18일 늦은 밤.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충격적인 내용을 고발했다. 갑자기 출연키로 했던 KBS로부터 ‘출연이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미 열흘 전쯤 담당 피디와 작가를 만나 방송 내용에 대한 강연 내용까지 서로 확인했다는 황교익의 출연정지 사유는 ‘특정 정치인을 지지’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황교익 씨는 지난 14일 더불어포럼에 공동대표로 참여했다.

 

황교익 씨는 선거기간도 아닌 때에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는 것이 방송출연금지의 이유가 될 수 없다고 항의의 뜻을 밝혔다. KBS 측에서 다시 연락이 왔으나 달라진 것은 없었다는 사실만 재확인 했을 뿐이다. 문화부 블랙리스트와 마찬가지로 황교익 씨가 KBS에 출연을 못하게 된 단 하나의 이유는 문재인을 지지했다는 것이다.

 


황교익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 글을 통해서 “이 신념은 나의 권리이고, 나의 자유이다. KBS는 나에 대한 협박을 거두라. 그리고 사과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황교익 씨가 KBS 아침마당에 출연해 강연할 내용은 ‘맛있는 식재료 고르는 요령’이었다고 한다.

 

황교익 씨가 더불어포럼에 가입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사실이다. 오히려 이런 일들을 통해 더 알려지게 된다는 사실이 더 아이러니하다. 또한 강연 내용으로 보아 시청자 누구도 정치적 동기를 갖고 티비를 볼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다. 과연 황교익 씨의 출연을 막아야만 했을까? 황교익 씨 말대로 현재는 선거기간도 아니지 않은가.

 

아마도 이것은 일종의 신호탄이자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이 일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또 하나의 블랙리스트를 떠오르게 한다. 바로 방송인 블랙리스트다. 떠오르는 인물들이 있다. 김미화, 김제동, 윤도현 등. 특히 방송인 김미화는 블랙리스트로 인해 KBS에 출연하지 못한다는 발언으로 인해 피소를 당했었다. 그러다 4개월 만에 KBS의 소취하로 소송전은 마무리가 됐지만 그 원인이 됐던 블랙리스트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지 못하고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황교익 씨 문제 하나로 블랙리스트의 존재 유무를 따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최순실 게이트가 우리들에게 준 절망적 팩트는 설마가 모두 사실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황교익 씨 사안이 단순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특검이 됐든 아니면 검찰이 됐든 방송계 블랙리스트에 대한 수사를 해야 할 것이다. 아직 블랙리스트와의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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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다 나은 예능? 봉건시대에도 없던 또 하나의 사실

Posted by 탁발
2016.11.03 03:48 시사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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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방영된 무한도전 및 런닝맨의 자막이 화제였다. 제작진이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 자의적으로 넣는 자막이나 출연자의 발언은 분명 요즘 대한민국 뉴스를 집어삼킨 최순실 게이트를 향한 풍자의 의도가 분명하다. 짧은 이런 풍자는 예능 시청자에게 의외의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최순실 게이트가 얼마나 막중하면 예능마저 이럴까 싶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뉴스가 예능만 못하다는 말이 회자하기에 이르렀다. 과연 그럴까? 너무 쉽게 단정짓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 저어하면서도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는 없었다. 오히려 예능이 전만 못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예전에는 흔히 “예능은 예능일 뿐 오해하지 말자”는 예능 속 구호를 들을 수 있었다.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이 구호가 외쳐질 때의 정치권은 정치인, 언론을 향한 트집 잡기도 부족했던지 코미디나 예능의 풍자에 대해서도 서슬 퍼런 경고를 날리고 있었다. 방통위가 정말 바빴던 시기도 꽤나 오래 지속됐다.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는 연예인 블랙리스트의 위력도 여전하다.

 

그 결과 요즘의 코미디에서는 풍자와 해학이 아예 자취를 감췄다. 그와 동시에 국내 예능 시청률 상위를 달리던 개그콘서트의 열기는 식어버렸고, 이제는 해야 되냐 마냐를 따질 초라한 모습이 돼버리고 말았다. 또한 풍자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SNL도 마찬가지 신세가 됐다. 풍자는 사라지고 그저 섹시 코드만 남았을 뿐이다.

 

기자와 탐사보도 피디들이 스스로 자기 검열에 빠질 정도의 상황이었으니 코미디의 위축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뉴스가 못하면 코미디라도 해야 하고, 할 수 있어야 했는데 그조차 못하게 한 것이 핵심이라 할 것이다.

 


민간인이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쳤다는 명제에 청와대의 비서실장은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런데 진짜로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 바로 대중의 풍자와 해학을 금지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판소리가 그렇다. 수많은 판소리들 중에서 살아남은 다섯 마당의 판소리에는 ‘더늠’이라는 전승과정에서의 변화도 많았지만 기본적으로 풍자와 해학은 온전히 전해진 공통점을 갖는다. 대중문화에 풍자는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의 예능과 코미디에서 그런 것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최근 화제가 됐던 무한도전의 자막이었지만 사실 이런 모습도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한동안 무도는 풍자의 메카였던 적도 있었다. 또한 개그콘서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무도나 개그콘서트에서 풍자를 본 기억조차 희미해졌다. 개그콘서트의 쇠락은 풍자의 금지가 가져온 필연적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렇듯 풍자가 금지된 시대에 코미디는 뻔히 보이는 웃음의 금맥을 포기한 채 방황했고, 그 결과 외모비하나 가학 등으로 근근이 버티기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는 동안 웃음으로도 불만을 털어버릴 수 없는 세월이 켜켜이 쌓여왔다. 이런 상황을 인식한다면 결코 뉴스보다 나은 예능이라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앞으로의 정치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풍자의 웃음까지 막는, 봉건시대보다 못한 짓만은 좀 하지 않기를 바란다. 얼마 전 CNN의 보도 중에 부패사건에 익숙한 한국인도 이번에는 크게 분노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 분노의 배경에는 풍자의 웃음을 금지한 이유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제발 이제는 정치와 방송의 막장일치의 시대는 좀 끝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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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투유. 김제동의 사람에 대한 사색의 깊이가 느껴진 순간

Posted by 탁발
2016.10.17 03:35 티비가요/예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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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밤 11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시 시작될 일상을 위해 잠을 자야 한다는 강박이 팽배한 시각이다. 어떤 프로그램이 됐든 이 시각의 편성은 잔혹하고 또 무모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부담에도 불구하고 매주 <김제동의 톡투유>를 기다리는 것은 이 험한 세상에서 매번은 아닐지라도 진짜 위로를 얻는 순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주는 오픈닝과 거의 동시에 가슴이 짠해져서 뜨겁게 눈물 한 방울을 흘리고 시작해야 했다. 매주 톡투유에는 이야기 주제가 정해지지만 시작할 때에는 항상 다른 이야기로 청중과의 거리를 좁히고, 또 온도를 높이는 김제동이다. 이번 주에도 청중들 사이를 뚫고 등장한 김제동은 어떤 것을 배우기가 정말 힘들었는지 물었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여기저기서 손을 번쩍번쩍 든다. 이것부터가 참 신기한 풍경이다. 주입식 교육의 폐해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정말 대중 앞에 나서서 말하기를 꺼려한다. 심지어 기자 간담회가 열려도 사회자는 질문 얻기 위해 정말 진땀을 빼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이제 김제동의 톡투유에서는 어지간해서는 누구도 마이크를 잡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도, 꺼려하지도 않는다. 명색이 김제동의 토크쇼인데, 김제동의 말을 듣고자 오는 것이 아니라 김제동에게 말을 하려고 오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것이 물론 세상에 없는 김제동만의 토크쇼인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그러다 먼 뒷자리에서 한 소녀가 손을 들었다. 그 소녀는 스스로 자존감이 낮아서 고민이라고 했다. 많은 사춘기 즈음의 소녀들이 그렇듯이 이 소녀도 외모 콤플렉스도 있는데 아마도 그것이 낮은 자존감의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소녀와 대화를 나누던 김제동이 불현 듯 소녀를 자리에서 일어나 통로로 나오라고 권했다.

 

소녀 청중이 다가오자 김제동은 방금 전에 소녀가 앉았던 자리를 보라고 했다. 그 빈자리를 보라고 했다. 누군가 앉아 있었던지 혹은 원래 주인이 없었던지 간에 빼곡한 사람들 속에 빈 한 자리는 분명 무척이나 쓸쓸해 보였다. 소녀도 뭔가 느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김제동은 소녀를 다시 자리로 돌려보내면서 말을 이어갔다.

 

“사람 하나 턱 들어오니까 자리가 훤하죠? 그럼 네가 그런 사람이야. 그렇게 있으면 되는 거야”라고 하면 스스로를 못났다고 하면 안 된다고 가뜩이나 못생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타일렀다. 스스로를 사랑해야 한다는 뜻임을 어린 소녀라고 모를 리 없었고, 소녀는 울컥 눈물을 터뜨렸다.

 


말을 그렇다 치더라도 그 소녀를 통로로 불러 자신이 앉아 있던 자리가 비어 있는 사소한 풍경의 의미,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던 소녀의 조용한 존재의 의미를 말해준 것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도대체 그 순간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너무도 신기하다. 그것은 지식도 아니고, 철학도 아니고 그렇게 말하는 자가 평소에 사람에 대해서 얼마나 깊이 사색하는지에 대한 증명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다.

 

김제동이 세상에서 가장 말을 잘 하는 사람은 아닐 수는 있겠지만 위로의 기교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늘 하게 된다. 그 기교는 다름 아닌 마음일 것이다. 마음 없이 하는 말과 행동이라면 이런 진한 감정을 받을 수 없다. 그렇게 엠씨가 아닌 청중들에게 듣고, 김제동에게서 또 듣다 보면 감동이나 위로는 저절로 생기는 것이 톡튜유인 것이다. 그러니까 늘 게스트들이 이구동성 하는 것 없이 얻어만 간다는 소감을 남기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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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의 톡투유. 거울, 이불 그리고 반창고의 일 년

Posted by 탁발
2016.05.09 03:14 티비가요/예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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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의 걱정말아요 그대 톡투유가 1년을 맞았다. 처음으로 게스트 없이 엠씨 김제동과 패널 최진기, 서찬석, 송길영 그리고 요조 등과 함께 했다. 그렇지만 톡투유는 1주년이라고 특별히 요란스러운 자축은 없었다. 대신 톡투유 1년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빅데이터를 정리하는 정도로 은근한 자부심을 드러내는 정도로 대신했다. 힐링캠프가 폐지된 이후 김제동이라는 방송인의 유일한 티비 프로그램이 된 톡투유. 그 일년은 우리에게 무엇이었을까?

 


우선 가장 중요한 의미는 아직도 김제동을 티비에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지상파 티비의 전유물이었던 예능이 종편, 케이블로 확장되면서 예능인의 수요는 대폭 늘었어도 김제동의 자리는 없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일주일에 열 편이 넘는 프로그램을 하느라 동분서주할 정도인데도 그렇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웃기기로는 결코 남에게 뒤지지 않는 김제동은 아직도 톡투유가 유일한 출연작이다. 그 사실에 화도 나지만 그래서 또 위로가 되는 것이 바로 톡투유다. 화가 나기로는 정작 본인보다 더 할 수는 없다. 그래도 김제동은 혼자 태연하다. 아니 유유자적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매주 일요일 늦은밤 김제동 때문에 많이 웃고, 많이 성찰도 하게 된다. 예능과 교양이 다 되는 프로그램은 톡투유뿐이다. 참고로 톡투유는 JTBC 교양국에서 제작을 한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아마도 파일럿 방송 때였을 것이다. 김제동은 자신의 코디네이터와의 일화를 소개하며 바로 그런 프로그램이 되겠다는 약속을 했다. 연예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때로는 억울한 상황에도 감정을 드러내기 힘든 김제동에게 그 코디는 “그 집 앞에 똥을 싸놓고 오겠다”고 한 것으로 기억이 된다.

 


그 코디의 말은 보복의 의미가 아니다. 어디 하소연할 데 없는 우리 수많은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약속은 백퍼센트라고는 할 수는 없어도 방송이라는 틀 안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은 보여준 것 같다. 그 구체적인 실천은 바로 방청객의 이야기들을 열심히 들어주는 것이었다.

 

말 잘하기로는 으뜸인 김제동과 박학다식한 최진기 강사 등이 포진하고 있지만 톡투유는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객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 말한게 한다는는 사실이다. 무척이나 놀라운 현상이다. 한국 사람들은 여전히 좀 많이 수줍다. 그래서 카메라가 비치고, 마이크가 다가오면 얼굴이 빨개지고 어지간하면 숨게 된다.

 

그런데 톡투유 방청객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마이크가 가면 말도 잘한고, 서로 잘 웃기도 한다. 그리고 그보다 더 잘하는 것은 남의 이야기에 너무도 잘 울어준다는 것이다. 거기에 소통과 공감과 위로가 다 담겨져 있다.

 


톡투유는 프롤로그에 몇 명의 방청객 인터뷰를 담는다. 이번 주 그들이 말한 톡투유에 대한 정의는 ‘거울’ ‘이불’ ‘반창고’ 등이었다. 거울을 자신을 성찰하게 했다는 것이다. 남과의 소통은 곧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는 의미에서 매우 적절한 표현이다, 그 소통은 이불과도 같은 공감의 따뜻함을 말한다. 그리고 반창고는 그렇게 소통하고 공감으로 얻는 위로, 위안을 의미한다. 과장도 아니고, 포장도 아닌 김제동의 톡투유 일 년을 그대로 말한 것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세상에 어떤 방송에서도 볼 수 없는 김제동의 톡투유만의 풍경이 또 일 년을 함께 했다. 그것은 김제동의 팔목에도, 방청객의 팔목에 걸려 있는 노란팔찌다. 다른 것도 아니고 단지 기억하겠다는 약속과 의지를 김제동은 톡투유 동안 내내 지켜왔고, 그런 김제동에 대한 호응으로 어떤 방청객들은 그렇게 노란팔찌를 차고 오는 것 같았다. 그렇게 톡투유 일 년은 진화를 했고, 또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을 지켜왔다. 톡투유가 있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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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5.09 11:18
    비밀댓글입니다

김제동의 톡투유에서 일어나는 흔한 기적

Posted by 탁발
2015.10.05 02:48 티비가요/예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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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의 톡투유는 단언컨대 세계 최고의 방청객들이 들어온다. 김제동이 세계 제일의 엠씨는 아니겠지만 이 세계 최고의 방청객들이 톡투유에 모이는 이유는 김제동 때문이다. 이 복잡한 관계를 쉽게 풀자면 김제동은 좋은 사람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게 좋은 사람(적어도 그렇게 믿게 되는) 김제동과 좋은 방청객들이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는 좋은 이야기들은 좋은 에너지가 된다.

 

이번 주 톡투유 첫 번째 주제는 외모였다. 김제동이 외모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왠지 자학 같고 한편으로는 ‘잘생긴 것들’에 대한 과장된 반발로 페이소스를 느끼게 한다. 김제동 자신도 “통상적으로 잘 생기지 않은 외모가 사람들에게 기쁨을 더욱 더 크게 줄 수 있겠구나”한다는 말로 청중들의 공감을 끌어내기도 했다.

 

그런데 늘 있는 이상한 일이 이 외모를 주제로 한 토크에서 일어났다. 그것은 마치 기적과도 같았다. 김제동의 톡투유에서는 자주 일어나지만 그렇다고 평범한 일이라고는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생각지도 못한 사람의 따뜻함을 목격하는 일이다.

 

 

물론 세상에는 꾸준히 미담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 그 미담을 직접 목격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은 그 일은 다른 이의 말이나 글을 통해서 전해 듣기 마련이다. 미담을 직접 보고 행복을 느끼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그래서 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부모가 물려준 그대로 살겠다는 신념이 있다는 중3 여학생의 당찬 이야기에 김제동은 그렇지 못한 사람을 찾았다. 다시 말해서 성형의 힘을 빌은 이의 고백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자 한 여대생이 손을 들고 그 신념은 부모로부터 잘 받았을 때 가능하다는 반론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자기 외모의 문제에 대해서 말을 하고, 그 문제에 대해서 옆자리에 있던 엄마와도 평소 그렇듯이 청중들의 웃음을 유발하는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러던 끝에 김제동이 엄마에 대한 불만은 없냐고 하자 그때까지 짙은 경상도 사투리로 유쾌하게 이야기를 해나가던 방청객의 표정이 달라지면 울컥하는 모습이었다. 여기까지는 보통 착한 딸들의 평범한 반응이었다. 그저 엄마라는 말만 나와도 눈물이 나는, 아직도 그런 나라인 것이 참 다행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 딸이 엄마라는 말에 울컥한 데에는 분명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엄마는 모야모야병이라는 희귀병을 안고 있었고, 딸은 엄마에 불만을 갖기에 충분한 20대 초반의 나이였지만 불만은커녕 그저 엄마가 스트레스 안 받고 아프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 모녀는 김제동의 톡투유 방청이 첫 모녀 데이트였다고 한다.

 

 

그쯤 되자 김제동은 마이크를 옆자리의 엄마에게 돌렸다. 그런 딸에게 한 마디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엄마는 딸을 말을 들으면서 울먹이는 표정이었지만 애써 참아내는 모습이었지만 마이크를 받자 울음을 참아내지 못했다. 손수건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한참을 오열했다. 그러자 화면에 왠 손이 하나 등장해서 우는 엄마의 등을 그 엄마의 엄마인 것처럼 쓸어주었다.

 

그 손의 정체는 잠시 후에 알 수 있었다. 이들의 이야기가 끝날 때쯤 그 손의 주인공은 손을 들어 김제동에게 발언을 요청했다. 그 손의 주인공은 옆자리의 낯선 모녀에게 녹화 끝나고 자기 집으로 함께 가자고 제안을 했다. 그러니까 엄마가 울 때 조심스럽게 위로하던 그 손은 낯선 사람의 것이었다.

 

이미 엄마의 사연에 눈물이 한 방울 흘렀고, 이 낯선 손의 따뜻한 마음에 또 한 방울 더 눈물이 났다. 세상이 각박해져서 이런 일은 없는 것이 정상(?)인데, 누군가를 연민하고, 위로하고 망설이지 않는 따뜻한 사람의 존재에 큰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행복이 존재하는 것이 너무도 다행이고, 그것을 김제동의 톡투유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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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 멋진분이죠~~!!배울점이 많아요
  2.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3. 저도 톡투유 광팬이에요ㅎㅎ김제동씨 진행을 정말 센스있게잘하죠?
    • 이렇게 진행을 잘 하는데..활동이 적은 것이 좀 아쉽습니다..

힐링캠프. 서장훈의 다시 읽는 논어?

Posted by 탁발
2015.09.22 03:11 티비가요/예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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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급 센터에서 어느덧 예능인의 모습으로 변모한 서장훈이 힐링캠프에 출연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갔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딱 두 가지였다. 하나는 집에 돌아와 하는 샤워를 한 시간 정도 한다는 것과 즐기면서 하라는 말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토로였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봤을 때 이 두 가지는 결국 같은 맥락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장훈은 단지 오래 집요하게 씻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마치 강박장애처럼 자신의 방식으로 주변 사물들을 정리해야 하는 것에도 철저했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가 농구선수로서 승부에 집중하다가 생겨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농구는 서장훈이 그렇듯이 일단 키가 큰 선수들이 28m 15m의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서 치열한 몸싸움을 통해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다.

 

서장훈처럼 센터 포지션일 경우는 특히 리바운드나 동료 선수의 컷인 플레이 등을 돕기 위해서 몸싸움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덩치가 큰 선수들이 40분 동안 코트에서 몸을 부딪치며 힘을 겨루다 보면 선후배 관계로 촘촘히 연결된 국내리그라 할지라도 감정도 생기기 마련이다. 그렇다 보면 단지 땀을 씻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날 경기의 감정까지 씻어내고 싶은 심정이 생길 법도 하다. 특히 패배했다면 그런 심정이 더욱 커질 수도 있을 것이다.

 

 

야구에 ‘끝나기 전까지는 결코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명언도 있지만 서장훈에게는 경기가 끝나도 끝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만큼 승부욕이 강했음을 반증해주는 토로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서장훈은 단지 승부욕만 강했던 선수는 아니었다. 국내 프로리그 통산 최고 득점과 최다 리바운드 기록을 갖고 있고, 아마도 쉬이 깨지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성취하고, 성공한 선수였다.

 

그러나 그런 서장훈에게 농구팬들의 시선은 그다지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상대가 없었던 최장신 센터의 독주가 불러온 결과일 것이다. 서장훈은 은퇴할 때에 어쩌면 깨지질 않을 자신의 기록에 대해서도 “이것밖에 못했나?”라고 했다고 한다. 이후 서장훈보다 키가 훨씬 더 큰 장신 센터가 출현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 농구 최고의 센터는 서장훈이다.

 

그런 정도면 그의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 본다면 좀 즐기면서 운동을 했을 것도 같은데 정작 당사자의 입에서는 정반대의 말이 나왔다. 서장훈이 말한 의미는 그만큼 치열했고 절실했다는 것이었지만 그 말 뒤에는 타고난 신체조건에 자신의 땀과 노력이 가려지는 것에 대한 거부라는 생각도 언뜻 들었다. 그러니까 서장훈이 키가 커서 당연히 농구를 잘하는 것은 아니라는 항변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서장훈은 은연 중에 공자님의 말씀을 반박하게 됐는데, 그 말에 묘한 끌림과 공감이 이어졌다. 사실 우리는 살면서 참 많은 교훈과 덕담을 듣게 되는데, 그중에 공자의 (知者不如好者 好者不如樂者)라는 말이 아마도 상위에 속할 것이다. 거기에 피하지 못하면 즐기라는 말까지 더해지는 것은 거의 정해진 코스라고도 할 수 있다.

 

요즘 시대를 인문학의 위기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몰라도 옛날에는 그저 옳은 줄로만 알았던 현인들의 말씀에 왠지 반기를 들고 싶은 심정일 때가 많다. 젊었다면 N포세대, 나이가 들었다면 올드푸어의 두려움에 떠는 세상인데 도대체 무엇을 즐길 수 있다는 말인가. 결국 공포와 위기를 즐기라는 것일 수밖에 없는데, 대단히 철학이 부족한 속물의 생각에는 단지 잔인할 뿐이다.

 

서장훈처럼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성공을 거둔 사람도 즐기지 못했다는데 그렇지 못하고 그저 떠밀려나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해온 사람들은 이 살벌한 경쟁 속에서 어떻게 즐길 수 있겠는가. 그래서 서장훈이 자신의 일을 즐기라는 말을 세상에서 제일 싫다고 하는 말이 어쩌면 자기의 삶을 즐기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작은 위안이 됐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 서장훈의 약간은 비뚤어진 인생철학은 적어도 솔직했고, 그래서 매력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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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투유 김제동의 하지 않은 약속 지키기

Posted by 탁발
2015.09.21 02:11 티비가요/예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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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로 20회를 맞은 jtbc 김제동의 톡투유다. 톡투유가 방영되는 일요일은 이미 지상파 3사의 주력 예능들이 저녁시간을 장악하기 위한 피 튀기는 경쟁을 하고 있고 충분한 효과를 얻고 있다. 거기다가 또 다시 개콘과 코빅 등의 코미디 프로그램까지 그 뒤에 기다리고 있어 일요일 저녁은 쉴 새 없이 웃을 수 있다.

 

그럼에도 다시 9시 40분에 김제동의 톡투유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웃음의 또 다른 기대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떤 기대일까? 파일럿 방송 때 김제동은 방청객과 시청자에게 한 가지 약속을 했었다. 자신의 코디네이터 상미 씨 같은 방송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대관절 상미 같은 토크쇼란 무엇일까?

 

김제동이 음식물 분리수거로 조금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에 조용히 들어주고, 다 듣고 난 뒤에는 자신의 일처럼 화내고 분해하던 상미 씨를 통해서 화가 다 풀리는 경험을 했다면서 톡투유도 방청객 혹은 시청자의 고민과 분노를 해결해주는 못해도 진심으로 들어주고 함께 공감하고 싶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김제동은 그 약속을 잘 지키진 못했다. 그 부분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연예인이면서도 톡투유의 김제동은 의도적으로 상미 씨가 되는 것을 참아내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대신 방청객이 그렇게 하게 유도할 때가 있다. 이번 주가 바로 그랬다.

 

한 여성 방청객이 3시간 반이나 걸린 고된 퇴근길을 이야기하면서 예전의 김제동처럼 억울한 일을 겪은 경험을 토로했다. 그러자 김제동은 앞서 달관한 듯 우문현답으로 객석을 들었다놓았던 또 다른 어린 방청객에게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그때 대답이 딱 김제동의 코디네이터 상미 씨처럼 속이 뻥 뚫리는 쾌감을 줄 수 있었다.

 

그것도 나쁘진 않지만 김제동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김제동에게 약속을 왜 지키지 않느냐고 따질 수도 없다.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는 것을 못하는 이유를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김제동은 자신이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약속을 말없이 지키고 있는 것으로 용서(?)할 수 있다.

 

매주 김제동이 등장할 때마다 김제동의 왼팔을 먼저 확인한다. 이번 주에도 그의 왼팔에 세월호 리멤버 팔찌와 리본이 있는지 보기 위해서다. 김제동이 말한 방송에서 말한 적 없으니 사실은 약속이라고 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잊지 않은 것에서 약속보다 더한 무게를 느끼게 된다.

 

 

지난 달 세월호 참사 500일 행사가 열렸다. 그때에도 여전히 화두는 잊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만큼 우리사회가 무엇인가에 뜨거워졌다가 금세 식어버리는 현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실종자를 아직도 한 명도 찾지 못한 이상 세월호 참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래서 더욱 잊지 않아야 하며, 그래서 김제동이 매주 톡투유 녹화 때마다 세월호 기억팔찌와 리본을 달고 나오는 것이 감동적이라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먹고 살기 바쁘다는 변명이 준비된 우리에게 보여주는 말없는 시위일지도 모른다.

 

김제동만 그런 것이 아니다. 가끔은 다른 가수로 대치되기도 했지만 홍대여신에서 톡투유 여신이 된 요조 역시 기억팔찌를 늘 차고 출연하고 있다. 톡투유 바깥에서는 요즘 새 드라마 치즈 인더 트랩을 한참 준비 중인 배우 박해진이 있다. 어쨌든 김제동이 말로 한 약속은 못 지키지만 그 대신이라고 하기는 좀 어색해도 말하지 않은 더 큰 약속을 지키는 모습이 역시 김제동이라는 믿음에 방점을 찍게 한다.

 

김제동, 요조의 기억팔찌를 보며 자신도 구하고 싶은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좀처럼 구할 수 없는 것이 기억팔찌이기도 한데, 때마침 세월호 팔찌 캠패인이 시작됐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다. 기억팔찌 10만개를 만들어 세월호 가족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크라우드펀딩이 열렸다. 김제동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라 우리도 좀 참여해야겠다. 우리 사회에 기억팔찌 10만개 정도는 돌아다녀야 정말로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잊지 않겠다는 말에 믿음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세월호 기억팔찌 캠패인 바로가기 http://www.ohmycompany.com/project/prjView.php?bbs_code=von_project&seq=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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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캠프 김상중. 시사와 예능 사이의 절묘한 줄타기

Posted by 탁발
2015.09.01 02:28 티비가요/예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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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힐링캠프에 김상중이 출연했다. 김상중이 힐링캠프에 출연한 것은 배우로서가 아니라 곧 1천회를 맞는 그것이 알고 싶다를 알리고자 하는 목적이었지만 거꾸로 위기의 힐링캠프의 걱정과 부담을 덜어주었다. 김상중은 시종 침착하고 진중한 모습이었지만 때로는 이미지 따위 생각 않는 진정한 팬 서비스를 보이는 등 방청객들의 뜨거운 집중을 끌어갔다.

 

이제는 대한민국의 대표 탐사보도 프로그램이 된 그것이 알고 싶다를 8년째 진행하고 있는 진행자의 모습과 어쨌든 토크쇼에 초대된 게스트로서의 두 모습을 김상중은 절묘하게 균형을 맞춰갔다. 시사 프로그램의 진행자다운 진지하고 침착한 모습을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지키면서도 필요한 때에는 원래 그랬던 것처럼 예능에의 적응력을 보였다.

 

그렇게 시사와 예능을 오가는 잰 걸음이 어쩌면 벅찰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김상중은 특유의 중저음의 톤으로 마치 연기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힐링캠프 김상중 편이 즐거웠던 것은 그의 신조어 맞추기나 기싱 꿍꺼떠 애교발음 등 소위 예능의 전형적인 요소들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김상중은 예능에 출연했음에도 예능에 자기 몸을 맞추려는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어쩌면 그것은 그의 출연 이유가 그것이 알고 싶다 1천회를 알려야 한다는 것 때문일지도 모르겠으나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시사도 아니고 예능도 아니지만 동시에 예능도 되고 시사도 되는 즐거움을 줬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단 한 주 만에 힐링캠프가 똑같은 포맷에도 불구하고 또 개편을 한 것처럼 아주 생소한 좀 더 친절하게 표현하자면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전적으로 게스트 김상중이 주는 무게감, 몰입도가 컸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바로 편집의 톤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조차도 게스트의 무게가 준 결과일 수 있다.

 

개편 후 힐링캠프는 500인의 엠씨라는 콘셉트에 전체적인 내용을 끼어 맞추려는 의도 때문에 전반적으로 어수선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차차 나아질 거라 기대하고 싶었지만 500인의 엠씨라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특별한 언급은 없었지만 이번 주 힐링캠프는 애써 500인의 엠씨에 억지로 몰아주기는 많이 줄었다. 그러면서 게스트에 더욱 집중했다.

 

 

운 좋게 좋은 게스트 김상중을 만나 얻은 이제 한 번의 가능성일 뿐이지만 그나마 너무 늦지 않은 것이 힐링캠프로서는 다행이고,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힐링캠프가 좀 더 용기를 낼 부분은 이번 개편의 핵심이 다름 아닌 김제동이었다는 당연한 사실이다. 여전히 jtbc의 또 다른 김제동의 토크쇼가 신경 쓰이는 것은 어쩔 도리 없다. 안고가야 할 원죄라고 할 수 있다. 그 원죄 때문에 김제동의 아주 오랜만의 단독 예능을 망치는 것보다는 극복하는 편이 훨씬 더 현명할 것이다.

 

그렇게 김상중이 힐링캠프 출연에는 또 다른 즐거움 혹은 숙제도 있었다. 김상중은 그것이 알고 싶다에 대해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했다. 반복은 강조의 의미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미제 살인사건만이 아니라 우리사회의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제작진만으로는 안 된다는 사실에 힘을 주었다. 힐링캠프에서는 직접 말할 수 없는 그의 진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더욱 그것이 알고 싶다 1천회가 궁금하고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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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캠프 정형돈. 4대강 언급에 그토록 정색했어야 했나?

Posted by 탁발
2015.08.25 03:25 티비가요/예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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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캠프의 위기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힐링이 멈춘 것이다. 개편 첫 회에는 분명 기대감이 있었는데 이후 힐링캠프는 500인의 엠씨라는 틀 안에 갇혀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시간만 보내고 있다. 이번 정형돈의 출연 때에는 힐링캠프의 문제점이 곪아터진 격이었다.

 

게스트 정형돈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런 정형돈에 대해서 김제동은 양가적 감정이라는 표현을 썼다. 결국 정형돈은 자신은 솔직해질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을 하고 말았다. 아무리 포맷이 바뀌어도 토크쇼 힐링캠프는 일단 진솔함을 전제로 한다. 그렇지만 정형돈은 말주변이 아주 좋은 편도 아니다. 말재주도 없고, 진솔하기에는 겁이 많은 게스트라면 당연히 집요하고 교묘한 엠씨의 역량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500인의 엠씨라는 구조 속에서 김제동 혼자서 하기도 어렵고, 결국은 겉도는 상황들이 되고 말았다.

 

그다지 재미를 느끼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가슴이 찡한 순간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김제동의 질문이나 관객들의 질문에도 정형돈의 대답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미로 속을 헤맬 뿐이었다. 사실 토크쇼에서 이런 게스트는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박수를 받던가 아니면 야유를 받더라도 일단 속내를 드러내야 하는데 정형돈은 자신 스스로도 답답해하면서도 딱 부러지는 대답을 꺼내놓지를 않았다.

 

 

아니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정형돈은 시청자가 무섭다는 말도 했다. 정형돈이 딱히 물의를 일으키거나 논란의 중심에 선 적은 없었지만 한국에서 가장 인기 많은 예능 무도에서의 10년을 보냈고, 논란으로 동료를 둘씩이나 잃은 경험이 있기에 대중에 대한 두려움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그렇게 이해를 한다고 하더라도 다소 실망스러운 장면도 없지 않았다. 방송 초반에 일단 김제동은 요즘 정형돈을 따라다니는 수식어 사대천왕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도대체 사대천왕이 누구냐고 묻자. 정형돈 역시 그게 뭐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자 김제동이 “4대강은 우리가 알겠다”고 하자 정형돈은 정색을 하면서 “그런 위험한 얘기는 저한테 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말을 막았다.

 

이어 정형돈은 “저는 정치적 소신을 밝히지 않겠습니다”라고 못을 박았다. 그렇게까지 말을 했으니 4대강에 대한 정형돈의 생각이 어떤지는 영영 알 길이 없다. 때문에 그에 대한 추측은 불필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4대강이라는 말에 빠르고 민감하게 반응한 것을 보면 관심이 없는 대상은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할 것이다.

 

 

물론 정형돈의 태도에는 김제동을 빗대어 나름 웃겨보자는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정색한 나머지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너무 몸을 사린다는 느낌을 줄 수 있었다. 정형돈이 그토록 조심하던 구설수의 빌미를 남긴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방송 후 기사에 정형돈의 태도에 대해서 부정적인 댓글들이 많이 달렸다.

 

한국 연예인들에게 정치적 입장을 밝힌다는 것은 대단히 어색한 일이다. 김제동 외에 이승환이나 김장훈 정도가 사회적 이슈에 반응할 뿐이다. 연예인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인 공인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많이 실망스럽고 한편으로는 대중에 대한 배신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한국 연예계의 풍토가 그렇기 때문에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정형돈만 표적 삼아 비난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을 항상 50 대 50의 줄을 탄다던 정형돈이 4대강이라는 단어만으로도 펄쩍 뛰는 모습은 조금 과했다. 굳이 그렇게까지 사회 이슈에 대해서 거부할 필요까지는 없었지 않았을까 싶다. 본인은 분명 웃기려고 한 행동이었겠지만 그 표현이 너무 강해서 오해를 살 만한 여지를 남긴 것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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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잘못된 것에 분노하지 못하고...분노하는 것도 가려 가면서 해야 한다는게 참! 안타깝습니다.
    녹조로 엉망이 된 낙동강에 유람선을 띄워서 관광을 즐기는 세상에 살아간다는게 슬프네요.
    • 연예인들에게 시국발언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너무 몸을 사리는 것도 보기 좋은 일은 아니죠.
      분노....가 있기는 하는지 이 시대에 묻고 싶습니다....